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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진 전통놀이, 골패놀이 남아 있지 않은 문화적 이유

📑 목차

    골패놀이란 무엇인가

    골패놀이(骨牌弄戲)는 한때 우리 민중 사이에서 유행했던 놀이 중 하나입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거의 사라져 찾아보기 어려운, 말 그대로 잊혀진 전통놀이가 되어 있습니다. 골패는 문자 그대로 ‘뼈로 만든 패’를 뜻하며, 나무에 상아나 동물뼈를 붙여 만든 패로 즐기는 게임입니다. 패의 표면에는 서로 다른 구멍의 개수와 색으로 숫자가 표시되어 있었으며, 이 패를 가지고 여러 방식으로 승부를 겨루는 놀이였습니다. 골패놀이는 쌍륙·투전과 함께 조선시대 대표적인 민속 놀이이자 도박 문화였으며, 그 구조는 단순한 오락을 넘어 복잡하고 다양한 전략적 요소를 포함하고 있었습니다.

    이 글은 골패놀이가 단순한 놀이를 넘어 당시 사회에서 어떤 의미를 지녔고, 왜 점차 일상 속에서 사라져 잊혀진 전통놀이가 되었는지를 문헌 및 사료를 기반으로 분석하는 데 목적이 있습니다.

     

    잊혀진 전통놀이, 골패놀이 남아 있지 않은 문화적 이유
    한국민족문화대백과

     

    골패놀이라는 놀이의 구조와 방식

    골패는 납작하고 네모진 검은 나무 바탕에 상아나 짐승뼈를 붙이고 여러 가지 수효를 나타내는 크고 작은 구멍을 새긴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각 구멍의 숫자와 색에 따라 이름이 붙여졌습니다. 전체 구멍의 합은 227점이었고, 패 하나하나는 다양한 조합과 이름을 갖고 있었습니다. 패는 1에서 6까지의 점수를 섞고 바꾸어 위아래로 새겼으며, 모두 32짝으로 되어 있습니다. 골패는 중국 송나라 때 생겨났다고 하므로 우리나라에는 고려시대에 들어왔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골패놀이의 방식은 매우 다양하여 지역별로 80가지 이상의 변형 규칙이 존재했다고도 전해집니다. 대표적인 놀이 방식으로는 여시·골여시·짝짜기·꼬리붙이기·포(飽) 등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두 사람이 둘러앉아 한 패를 내고 그에 맞는 패를 조합하는 방식이 있었고, 여러 사람이 참여해 점수를 정하는 형식 등 변형이 많았습니다.

    골패놀이는 단순히 패를 맞추는 과정을 넘어서, 상대의 패를 읽고 전략을 세우는 요소가 강했습니다. 이러한 특성은 골패가 단순한 놀이를 넘어 사회적 상호작용과 경쟁을 포함한 놀이 문화였음을 보여 줍니다. 플레이 방식의 복잡성 때문에 규모 있고 규칙이 정교한 놀이가 되었으며, 이는 골패놀이가 단순히 시간 때우기용 놀이가 아닌 사회적 활동의 일부로 인식되었음을 시사합니다.

    골패놀이의 역사적 기원과 문헌 속 등장

    골패놀이라는 명칭은 조선시대 향토 사료에서도 확인됩니다. 경기도 광명 지역을 중심으로 한 향토 기록에서는 골패놀이가 겨울철 농한기 전통놀이로 분류되며, 주변에서는 쌍륙·투전 등과 함께 도박적 놀이로 등장합니다. 골패 패는 나무 바탕에 상아나 짐승 뼈를 붙여 만든 것으로, 크기는 비교적 작았으나 그 구성과 명칭은 다양했습니다. 골패놀이는 특정 왕대에 창시된 놀이가 아니라, 조선 이전부터 민간에서 자연 발생적으로 형성된 놀이로 추정됩니다. 현존 사료에서는 골패놀이의 시작 시점을 명확히 특정할 수 없으며, 조선 전기에는 이미 존재를 전제로 한 기록 양상이 나타납니다. 조선 중기(선조 이후 숙종~영조 대)에 이르러서야 골패놀이는 투전·쌍륙과 함께 사회적 폐해를 낳는 노름으로 인식되며 금지와 단속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이는 골패놀이가 오랜 시간 일상 속에서 누적·확산된 생활 놀이였음을 반증합니다.

    정약용의 『목민심서』 형전 편에는 당시 사회에서 골패 방식과 유사한 놀이들이 도박으로 인식되어 언급됩니다. 골패놀이는 투전과 함께 도박적 유희로 문제시되었으며, 당시 관리들로부터 비판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목민심서』는 도박 중에서도 특히 투전과 골패를 지적하며 그 폐해를 언급하고 있습니다. 골패놀이의 기록이 놀이 구조보다 금지와 단속 중심으로 남은 이유는, 당시의 기록 주체가 관료와 유학자였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놀이를 문화적 행위로 기록하기보다는, 사회 질서를 해치는 행위로 분류하여 행정 문서나 금령의 형태로 남겼습니다. 이로 인해 골패놀이는 실제 놀이 방식이나 생활사적 맥락이 충분히 기록되지 못한 채, 문제적 행위로만 사료에 남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기록 방식의 편향성은 골패놀이가 잊혀진 전통놀이가 되는 데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습니다.

    또한 박물관 유물 자료에서는 19세기 후반 골패와 골패를 담던 주머니 유물이 확인되기도 합니다. 이는 골패놀이가 단순히 구전으로만 이어진 것이 아니라, 실물 자료로 남아 있을 만큼 당시 생활 속에 존재했음을 보여 줍니다.

    골패놀이의 사회적 위치와 기능

    골패놀이는 당시 사회에서 성인 남성 중심의 놀이이자 사교적 문화로 기능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일부 자료는 고전소설 속에서 골패가 등장하며, 장기·골패·쌍륙·투전 등이 회자되는 장면을 보여 주기도 합니다. 이는 놀이가 일상 속에서 널리 퍼졌다는 간접적 증거로 읽힙니다.

    한편 골패놀이는 단순히 돈을 거는 도박으로만 인식되지 않았습니다. 어떤 지역에서는 점수를 계산하고 패를 조합하는 놀이법이 성행했으며, 패 자체가 이름과 다양한 조합 규칙을 갖췄던 점으로 보아, 놀이 구조 자체도 높은 수준의 전략 요소를 포함했습니다. 이러한 성격은 골패놀이가 계층을 막론하고 즐길 수 있는 놀이였음을 시사하며, 동시에 복잡성과 난이도는 놀이가 넓게 퍼지는 데 한계로 작용했을 수도 있습니다.

    금기와 도박 인식 : 왜 골패놀이는 문제시 되었는가

    조선 시대 사회는 유교적 가치관을 바탕으로 노름과 도박을 크게 경계하고 금지했습니다. 『목민심서』를 포함해 많은 문헌에서 투전과 쌍륙뿐 아니라 골패와 관련된 유희가 언급되며, 특히 경제적 폐해와 도덕적 문제로 지적되었습니다.

    이러한 도박적 성격에 대한 인식은 골패놀이가 놀이 문화로서 생존하는 것을 어렵게 했습니다. 단순 놀이나 생활 놀이가 아니라 재산의 이동이 수반되는 행위로 인식되었기에, 제도권에서는 이를 적극적으로 억압했습니다. 기록은 놀이 자체보다는 골패가 가져오는 사회적 폐해를 중심으로 남아있으며, 이는 놀이 구조의 문화적 의미를 반영하지 못한 채 부정적 맥락으로만 전승되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골패놀이가 잊혀진 전통놀이가 된 이유

    골패놀이는 도박적 성격으로 인해 공식 기록 속에서만 남았을 뿐, 놀이의 실제 방식과 문화적 의미는 제대로 기록되지 못했습니다. 골패놀이라는 단어는 일부 향토사료나 박물관 유물 설명에서 확인되지만, 당시 놀이 규칙이나 연행 방식에 대한 상세한 기록은 현전하지 않습니다. 이는 골패놀이가 생활사 전승 구조로 남지 못했기 때문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또한 골패놀이는 복잡한 룰과 전략적 요소 때문에, 간단한 구전 전승 놀이보다 전문적 성격이 강했습니다. 이는 놀이가 보통 아이들 사이에서 자연스럽게 전승되지 못하게 했으며, 그 결과 골패놀이는 지역적·세대적 반복 체험 없이 사라지게 된 것입니다. 학자들도 골패놀이를 논할 때 주로 유물과 기록의 잔존을 바탕으로 간접적으로 재구성할 뿐, 정확한 놀이 방법을 명문화된 문헌으로 확인하기는 어렵습니다. 골패놀이는 복잡한 규칙과 점수 체계, 그리고 재물 이동을 전제로 한 구조로 인해 아동 놀이로 전승되기 어려웠습니다. 이는 공기놀이나 숨바꼭질처럼 세대를 건너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놀이와 달리, 성인 남성 중심의 놀이 문화로 고착되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결국 골패놀이는 생활 속 반복 전승 구조를 갖추지 못했고, 금지와 함께 급격히 소멸되며 잊혀진 전통놀이로 남게 되었습니다.

    이는 골패놀이가 잊혀진 전통놀이로 분류되는 구조적 이유입니다. 놀이가 생활 속 반복 경험을 통해 공유되지 못한 채, 도박으로서만 기록된 것입니다.

    잊혀진 골패놀이의 문화적 의미와 기록의 의의

    골패놀이는 조선의 어느 특정 왕 때 시작된 놀이가 아니라, 기록 이전부터 민간에 축적되어 존재해 온 생활 놀이였으며, 조선 중기 이후 사회적 통제 속에서 문제시되며 잊혀진 전통놀이로 전락한 사례입니다. 그것은 특정 사회적 조건 속에서 놀이가 어떻게 인식되고 통제되었는지를 보여 주는 사례입니다. 잊혀진 전통놀이로서 골패놀이를 재조명한다는 것은, 단순히 과거 놀이를 부활시키려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놀이가 어떤 방식으로 문화적 의미를 갖고 있었는지를 재해석하고, 당시 사회의 놀이 인식과 제도적 억압 관계를 이해하는 작업입니다.

    골패놀이는 그 복잡성 때문에 널리 전승되지 못했으며, 동시에 도박적 속성 때문에 제도적 통제를 받아왔습니다. 이러한 두 가지 조건이 결합되어, 골패놀이는 오늘날 거의 사라진 상태로 남아 있습니다. 그러나 문화사적 분석을 통해 우리는 골패놀이가 단순한 유희가 아니라, 복잡한 놀이 구조와 사회적 의미를 가진 문화 요소였음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골패놀이는 잊혀진 전통놀이 중에서도 기록이 매우 희미한 사례입니다. 그것은 놀이가 기록되고 전승되는 방식과 그렇지 않은 방식이 어떻게 다르게 나타나는지를 잘 보여 줍니다. 웃음과 흥으로 가득 차 있던 놀이가 왜 사라졌는가를 묻는 것은, 곧 놀이가 사회 구조 속에서 어떤 역할을 했는지 되묻는 일입니다. 골패놀이를 포함한 잊혀진 전통놀이를 다시 기록하고 재해석하는 작업은, 과거를 이해하는 가장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방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