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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이의 경계로서의 장터 문화
우리는 흔히 전통놀이를 윷놀이, 씨름, 투호처럼 규칙이 고정되고 문헌에 기록된 것으로 이해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조선시대 장터(場市)와 그 속에서 발생했던 흥정 과정과 각종 상호작용은 단순한 교역 행위를 넘어서 놀이적 상호작용의 핵심 축을 형성했습니다. 조선시대 장터는 물건을 사고파는 장소였지만, 동시에 사람들이 이동하고, 관찰하고, 말로 교섭하며, 관계를 형성하는 생활 문화의 중심 공간이었습니다. 장터는 그 자체로 경제·사회·문화가 결합된 일상 공간이었으며, 정기적으로 열리는 오일장·5일장은 공동체의 생활 주기를 구성하는 핵심 요소였습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장터는 단지 물건을 사고파는 공간이 아니라, 사람들이 상호 작용하고 관계를 형성하는 생활 놀이의 장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조선시대 장터 이동과 흥정 행위는 규칙서나 경기 형식을 갖추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반복성·상호작용·자율성을 갖춘 잊혀진 전통놀이의 한 유형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 전통놀이라는 범주에서 배제되었을 뿐, 장터 문화 속에는 분명히 놀이적 구조가 내재되어 있었으며, 이는 기록되지 못해 사라진 생활형 잊혀진 전통놀이의 전형적인 사례입니다.
이 글은 장터 이동과 흥정 행위를 잊혀진 전통놀이의 관점에서 재조명하면서, 왜 이러한 놀이적 요소가 오늘날 기록에서 사라졌는지를 문헌·사료·민속사적 근거로 분석합니다.

조선시대 장시 제도의 형성과 장터의 생활사적 의미
조선시대 장시는 국가가 공식적으로 허용하고 관리한 시장 제도였습니다. 『경국대전』과 『대전회통』에는 장시 개설과 운영에 관한 규정이 나타나며, 각 지역 읍지와 지리지에는 장시의 위치와 장날 주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조선 후기 장시는 보름장 형태에서 출발해 정기적으로 5일·10일·15일 단위로 열리는 오일장 형태로 발전했으며, 한 달에 여섯 번 열리는 5일장이 가장 보편적인 형태였습니다. 특히 조선 후기에는 5일장 체계가 전국적으로 확산되면서, 장터는 단순한 상업 공간을 넘어 생활 주기를 구성하는 핵심 요소로 기능했습니다. 『경국대전』 시대 이후 장은 법제화·공식화되었으며, 지방 행정 문서인 지리지·읍지에도 장시 정보가 반영되며 시장이 사회적 생활의 구조로 자리 잡았음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이러한 문헌 자료에서는 장터를 경제적 공간으로만 기술할 뿐, 그 속에서 일어나는 사람과 사람의 상호행위, 흥정, 상호작용의 놀이성은 명시적으로 기록되지 않았습니다. 이는 당시 기록의 목적과 기준이 사회 질서 유지, 행정적 통제, 도덕적 평가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놀이적 요소는 문서화되기 어렵고, 기록자에게 관심 대상이 되지 않았다는 점을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동국문헌비고』와 각 지방 읍지를 살펴보면, 장터는 교역뿐 아니라 사람들의 왕래, 정보 교환, 혼담, 소식 전달, 오락이 함께 이루어지는 복합 공간으로 묘사됩니다. 장날은 농사 일정과 맞물려 반복되었고, 사람들은 장날을 기준으로 이동 계획과 일상 리듬을 조정했습니다. 이러한 반복성과 주기성은 놀이의 핵심 요소 중 하나입니다. 놀이란 규칙과 반복을 통해 의미를 갖는 행위이며, 장터 이동 역시 그러한 구조를 갖추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생활사적 기능은 경제 활동이라는 이름 아래 묻히면서, 장터는 놀이와 분리된 공간으로 인식되기 시작했습니다. 이 지점에서 장터 문화는 놀이였음에도 놀이로 인식되지 않은 잊혀진 전통놀이의 조건을 형성합니다.
잊혀진 전통놀이로서의 장터 이동 구조
장터는 단지 교역 장소가 아니라 이동의 공간이었으며, 이를 통해 사람들은 서로 다른 마을·지역과 만났습니다. 장터로 이동하는 행위는 단순한 이동이 아니었습니다. 사람들은 장날을 맞아 정해진 경로로 이동했고, 이동 중 만나는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고, 누가 먼저 도착했는지, 누가 더 많은 물건을 가져왔는지를 자연스럽게 비교했습니다. 이러한 비교와 관찰은 경쟁을 전제로 하지 않으면서도 놀이적 긴장감을 형성했습니다.
특히 5일장을 중심으로 지역 주민들은 자연스럽게 이동 거리, 경로, 속도, 휴식 및 경쟁 요소를 갖게 됐습니다. 이는 현대의 보드게임이나 규칙 중심 놀이와는 달랐지만, 반복의 리듬, 공간 인식, 목표 지향적 행동이라는 놀이의 기본 구조와 맞닿아 있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처럼 장터로 이동하고 장날을 기다리며 반복적으로 참여하는 행위는 명시적인 규칙이나 승패를 갖추지 않았음에도, 공동체 내부에서 공유된 방식으로 지속되었습니다. 이러한 특징은 노동·이동·교류가 결합된 잊혀진 전통놀이가 어떻게 일상 속에서 자연스럽게 작동했는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사례입니다.
장날의 이동은 단순히 물건을 사기 위한 목적을 넘어 사회적 정보 수집과 관계 맺기의 과정이었습니다. 장시의 주막(酒幕)은 단지 술을 마시는 공간이 아니라 이동 과정의 휴식·대화·흥정이 이루어지는 문화적 공간이었으며, 이는 장터가 놀이적 상호작용의 종합적인 장이었음을 보여 줍니다.
특히 도보 이동이 일반적이던 시기, 장터 이동은 일정한 체력 소모와 리듬을 동반했고, 짐의 무게와 이동 속도는 개인의 경험과 숙련도에 따라 달라졌습니다. 이는 오늘날의 놀이에서 말하는 ‘기술 차이’와 유사한 구조입니다. 누가 더 효율적으로 이동하는지, 어떤 길이 빠른지에 대한 암묵적 지식은 장터 이동을 반복할수록 축적되었습니다.
이러한 이동 과정은 놀이처럼 규칙이 문서화되지 않았지만, 공동체 내부에서는 충분히 공유되는 암묵적 규칙이 존재했습니다. 이 점에서 장터 이동은 규칙이 느슨한 자율 놀이형 잊혀진 전통놀이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잊혀진 전통놀이 관점에서 본 흥정의 놀이성
장터에서의 흥정(상거래 대화)은 오늘날 경제학이 말하는 가격 결정 이상의 의미를 가졌습니다. 전통시장은 공급과 수요가 만나 상품 가격과 수량을 결정하는 공간인 동시에, 사람들 간 커뮤니케이션의 장(場)이었습니다. 장터에서의 흥정은 가격 협상이자 언어 놀이였습니다. 『한국상업사연구』와 『조선후기 시장경제 연구』에서는 전통 시장의 흥정을 단순한 가격 조정 행위가 아니라 사회적 관계를 조정하는 의사소통 행위로 설명합니다. 흥정은 말의 순서, 억양, 표정, 침묵까지 포함한 복합적인 상호작용이었습니다.
흥정에는 고정된 규칙이 없었지만, 반복을 통해 형성된 관습이 존재했습니다. 처음 제시하는 가격, 물러서는 시점, 웃음으로 마무리하는 과정은 장터마다, 상인마다 차이가 있었지만 일정한 패턴을 공유했습니다. 이는 놀이의 핵심 요소인 ‘예측과 변주’를 동시에 충족합니다.
흥정 과정은 놀이의 중요한 구성 요소인 자율성, 도전, 상호작용을 포함합니다. 참가자는 일정한 규칙서 없이 경험과 암묵적 규칙을 바탕으로 가격을 제안하고, 상대방의 반응을 읽고 조정하면서 상호작용을 지속했습니다. 이 과정은 현대 놀이에서 말하는 전략적 판단과 상대 반응에 따른 규칙 조정과 일맥상통하며, 단순한 거래 행위가 아니라 놀이적 상호작용이었음을 암시합니다. 그러기에 흥정은 승패가 명확하지 않았으며 누가 이겼는지보다, 거래가 성사되었는지, 관계가 유지되었는지가 더 중요했습니다. 이 점에서 흥정은 경쟁 중심 놀이가 아니라 관계 중심 놀이였으며, 이러한 특성 때문에 기록에서는 배제되었고 기록의 측면도 중시되지 않았습니다.
민속화와 회화 자료 속 장터의 놀이적 장면들
단원 김홍도의 풍속화와 혜원 신윤복의 풍속화에는 장터 장면이 반복적으로 등장합니다. 이 그림들에서 장터는 단순한 거래 현장이 아니라 사람들의 표정, 몸짓, 대화가 살아 있는 공간으로 묘사됩니다. 특히 김홍도의 장터 관련 그림에서는 물건을 들여다보는 시선, 웃으며 대화하는 모습, 흥정을 벌이는 장면이 상세히 표현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회화 자료는 문헌 기록이 포착하지 못한 놀이적 상호작용을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중요한 사료입니다. 그림 속 인물들은 정적인 노동자가 아니라 끊임없이 움직이고 반응하며 관계를 맺는 존재로 등장합니다. 이는 장터가 생활 놀이의 장이었다는 점을 시각적으로 증명합니다.
그러나 민속화는 설명문을 동반하지 않기 때문에, 그 속의 놀이성은 해석되지 않은 채 미술사적 자료로만 소비되어 왔습니다. 이 또한 장터 놀이가 잊혀진 전통놀이로 남게 된 또 하나의 이유입니다. 이처럼 회화 자료는 장터가 단순한 경제 공간이 아니라, 사람들의 상호작용과 놀이적 행동이 축적된 공간이었음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이러한 장면들은 전통놀이로 분류되지 않았고, 놀이 목록에서도 제외되면서 잊혀진 전통놀이로 남게 되었습니다. 이는 놀이의 부재가 아니라, 놀이를 기록하는 기준의 문제였습니다.
근대 이후 장터 놀이의 해체와 기억의 축소
근대 이후 상설 시장과 근대적 유통 구조가 등장하면서, 장터의 이동성과 흥정 중심 구조는 급격히 약화되었습니다. 가격은 고정되었고, 이동은 교통수단에 의해 단축되었으며, 장날 중심의 생활 리듬은 붕괴되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장터의 놀이적 요소는 더 이상 반복되지 못했고, 기억에서 밀려나게 되었습니다.
결과적으로 장터 이동과 흥정은 ‘놀이가 아니었던 행위’로 재해석되었고, 전통놀이의 범주에서 완전히 이탈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는 놀이의 부재가 아니라 기록과 제도의 선택 문제였습니다.
잊혀진 전통놀이로서 장터 놀이를 재조명하는 의미
장터 이동과 흥정은 기록으로 남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놀이가 없었다’고 할 수 없습니다. 오히려 장시는 조선시대 일상생활의 사회적 상호작용과 놀이적 경험이 집약된 공간이었습니다. 장터 이동과 흥정 놀이를 잊혀진 전통놀이로 재조명하는 일은 놀이를 복원하기 위함이 아닙니다. 그것은 놀이가 어떤 기준으로 기록되고, 어떤 기준에서 배제되었는지를 이해하기 위한 작업입니다. 장터는 조선시대 사람들이 가장 자주 참여했던 생활 공간이었으며, 그 안에는 수많은 놀이적 상호작용이 존재했습니다. 그리고 장터 풍경은 상품의 거래뿐 아니라 인간의 상호작용과 놀이적 구조가 결합된 공간이었습니다. 장터 이동과 흥정은 놀이가 아니었던 것이 아니라, 놀이로 분류되지 않았던 행위였습니다. 경쟁과 승패, 규칙이 명확한 놀이만을 전통놀이로 기록해 온 기준 속에서, 생활 속 상호작용형 놀이는 자연스럽게 탈락했습니다. 따라서 장터 문화는 조선시대 사람들이 가장 자주 경험했던 잊혀진 전통놀이의 집합 공간이었다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 글을 통하여 전통놀이 연구에서 놀이가 존재했던 그 시대 정황과 삶의 방식을 이해하며 잊혀져가는 전통놀이에 보다 가까이 다가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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