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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진 전통놀이, 고누

📑 목차

    고누가 아이들 놀이로 살아남다

    잊혀진 전통놀이는 언제, 어떻게 사라졌을까요. 그리고 정말로 완전히 사라졌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우리는 흔히 전통놀이를 과거의 풍경 속에 고정된 유물처럼 떠올리지만, 실제로 많은 잊혀진 전통놀이는 형태를 바꾸어 지금도 일상의 주변부에서 조용히 존재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그 존재 방식이 더 이상 ‘전통놀이’로 인식되지 않을 뿐입니다.

    여기서는 잊혀진 전통놀이를 단순한 체험이나 재현의 대상으로 다루지 않습니다. 오히려 전통놀이가 어떤 사회적 조건 속에서 형성되었고, 왜 기록되지 못했으며, 어떤 이유로 특정 계층이나 연령대에만 남게 되었는지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잊혀진 전통놀이는 단절의 결과가 아니라, 선택과 배제의 역사 속에서 살아남은 문화의 한 단면이기 때문입니다.

    고누놀이는 이러한 문제의식을 가장 잘 보여주는 잊혀진 전통놀이입니다. 오늘날 고누놀이는 어린이 놀이로 인식되거나 교육용 전통놀이로 소개되는 경우가 많지만, 본래는 특정 연령이나 계층에 국한되지 않은 생활 놀이였습니다. 그렇다면 왜 고누놀이는 다른 전통놀이와 달리 아이들 놀이로만 기억되게 되었을까요. 그리고 그 과정에서 무엇이 남고, 무엇이 사라졌을까요.

    여기서는 잊혀진 전통놀이 고누가 아이들 놀이로 살아남게 된 과정을 문헌 자료와 사료를 바탕으로 살펴보고, 전통놀이가 사회 변화 속에서 어떤 방식으로 위치를 바꾸는지를 분석하고자 합니다. 이를 통해 잊혀진 전통놀이를 단순한 과거의 유산이 아닌, 지금도 해석 가능한 생활문화의 요소로 바라보고자 합니다.

     

    잊혀진 전통놀이, 고누

     

    잊혀진 전통놀이 고누는 왜 아이들 놀이로 살아남았는가

    잊혀진 전통놀이라는 말은 대개 더 이상 행해지지 않는 놀이를 떠올리게 합니다. 그러나 실제 전통놀이의 전승 양상을 살펴보면, 완전히 사라진 경우보다 형태를 바꾸어 특정 집단 안에서만 남은 사례가 더 많습니다. 고누놀이는 그러한 잊혀진 전통놀이의 전형적인 사례입니다. 고누놀이는 공식적인 기록이나 제도적 보호 속에서 전승된 놀이가 아니라, 오히려 일상과 생활의 틈새에서 명맥을 유지해 온 놀이입니다.

    특히 고누놀이는 오늘날 ‘어린이 놀이’로 인식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는 고누놀이가 원래부터 아동 전용 놀이였기 때문이 아니라, 전통사회에서의 생활 조건과 놀이 환경이 해체되는 과정 속에서 전승 주체가 아이들로 수렴되었기 때문입니다. 잊혀진 전통놀이 고누가 아이들 놀이로 살아남은 이유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고누놀이의 연원과 사회적 성격, 그리고 기록 방식의 한계를 함께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평민층의 일상 속에서 형성된 잊혀진 전통놀이

    고누놀이는 조선시대 상류층의 향유물이나 의례 놀이가 아니었습니다. 문헌 자료에 따르면 고누놀이는 평민층이 일상적으로 즐기던 놀이였습니다. 땅바닥이나 사방 30cm 내외의 널판지에 말판을 그리고, 돌이나 나뭇가지, 풀잎 같은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물건을 말로 사용하여 승부를 겨루는 놀이였습니다. 고누, 꼰, 고니, 꼬누, 꼰짜 등 다양한 명칭이 존재했다는 점에서도, 이 놀이가 특정 지역이나 계층에 국한되지 않고 생활 전반에 퍼져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러한 특징은 고누놀이가 기록 문화의 중심에서 벗어나 있었음을 의미합니다. 잊혀진 전통놀이가 되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놀이 자체가 ‘기록할 가치가 없는 일상’으로 인식되었기 때문입니다. 고누놀이는 문인이나 사대부가 글로 남길 만한 품격 있는 놀이로 여겨지지 않았고, 자연스럽게 공식 문헌에서는 주변부로 밀려났습니다. 이 점은 고누놀이가 오랫동안 존재했음에도 불구하고, 체계적인 기록이 부족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사료로 확인되는 고누놀이의 역사성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누놀이의 존재는 여러 사료를 통해 확인됩니다.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에 따르면, 고누놀이는 정확한 기원은 알 수 없지만 최소한 고려시대 이전부터 행해졌던 놀이로 추정됩니다. 14세기에 건립된 전라남도 담양군의 소쇄원 건물 마루에 고누판이 그려져 있으며, 더 이른 시기의 사례로는 황해도 봉천군 원산리에서 출토된 10세기 초 청자 가마터에서 고누판이 발견된 기록이 전해집니다.

    이러한 유물은 고누놀이가 단순한 어린이 놀이가 아니라, 성인 남성들까지 포함한 광범위한 계층이 즐겼던 놀이였음을 보여줍니다. 즉, 오늘날 잊혀진 전통놀이로 분류되는 고누는 본래 사회적 연령 구분 없이 향유되던 놀이였으며, 오랜 시간 동안 생활문화의 일부로 기능해 왔습니다.

    도구와 장소가 만들어낸 전승의 유연성

    잊혀진 전통놀이 고누가 끝내 완전히 사라지지 않은 이유는 놀이 도구와 장소의 특성에 있습니다. 고누놀이는 특별한 기구가 필요하지 않습니다. 땅, 종이, 나무판자 등 어디에든 말판을 그릴 수 있고, 말 역시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물건으로 대체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단순성은 고누놀이가 특정 공간이나 계층에 종속되지 않고, 어디서나 재현될 수 있도록 만들었습니다.

    대구광역시 지역에서도 과거 고누놀이가 매우 성행했으며, 농민이나 나무꾼들이 잠시 일을 멈추고 논두렁이나 나무그늘 아래에서 즐겼다는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아이들 역시 마당 한구석에서 자연스럽게 고누놀이를 익혔습니다. 이처럼 일상 속에 깊이 스며든 놀이였기에, 사회 구조가 변화한 이후에도 놀이의 핵심 구조는 남을 수 있었습니다.

    놀이 방식과 사고력 중심의 구조

    고누놀이는 단순한 운 놀이가 아닙니다. 우물고누, 줄고누, 호박고누 등 다양한 방식이 존재하며, 말의 이동과 상대의 수를 읽는 전략적 사고가 요구됩니다. 특히 우물고누는 제한된 공간과 장애물 설정을 통해 상대의 말을 움직이지 못하게 만드는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는 장기나 바둑과 유사한 사고 방식을 필요로 하며, 놀이를 통해 집중력과 인지력을 자연스럽게 훈련할 수 있게 합니다.

    이러한 특성은 고누놀이가 교육적 가치가 있는 놀이로 재인식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잊혀진 전통놀이가 현대에 다시 등장할 때, ‘교육적 효과’라는 언어를 통해 의미가 재구성되는 경우가 많은데, 고누놀이는 그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왜 아이들 놀이로만 남게 되었는가

    고누놀이가 아이들 놀이로 인식되게 된 것은 근대 이후 생활환경 변화와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성인들의 여가 문화가 변화하면서, 논두렁이나 마을 공터에서 자연스럽게 놀이를 즐기던 환경은 점차 사라졌습니다. 반면 아이들은 여전히 바닥에 그림을 그리고 놀이를 만들어내는 문화에 익숙했으며, 고누놀이는 그러한 환경에 쉽게 적응할 수 있었습니다.

    결과적으로 잊혀진 전통놀이 고누는 ‘전승’이 아니라 ‘잔존’의 형태로 남게 되었습니다. 의도적으로 가르치거나 그대로 재현하지 않아도, 아이들의 놀이 감각 속에서 자연스럽게 이어졌던 것입니다. 이는 고누놀이가 제도 밖의 놀이였기 때문에 가능한 전승 방식이기도 합니다.

    오늘날의 고누놀이의 의미

    현재 고누놀이는 도시화와 함께 거의 자취를 감추었지만, 초등학교 교과서나 전통놀이 체험 프로그램을 통해 제한적으로 소개되고 있습니다. 어린이날 행사나 국립대구박물관 등지에서 체험 형식으로 재현되며, 잊혀진 전통놀이로서의 가치를 다시 부여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재현은 과거의 생활 속 놀이와는 다른 성격을 가집니다. 고누놀이는 본래 특별한 행사나 교육 프로그램이 없어도 존재했던 놀이였다는 점에서, 오늘날의 방식과는 분명한 차이를 보입니다. 

    잊혀진 전통놀이 고누는 사라진 놀이가 아니라, 사회 변화 속에서 위치를 바꾼 놀이입니다. 그 생존 방식은 전통놀이가 어떻게 기억되고, 어떻게 잊히는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사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