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팽이놀이는 왜 기록되지 않았는가

📑 목차

    팽이놀이, 잊혀진 전통놀이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전통놀이에는 윷놀이, 제기차기, 연날리기 등이 있습니다. 그러나 팽이놀이는 많은 이들이 어릴 적 경험했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전통놀이 목록에서 빠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것은 팽이놀이가 실제로 사라졌기 때문일까요, 아니면 기록의 대상이 되지 못했기 때문일까요? 팽이놀이는 사라진 놀이가 아니라 기록되지 않은 일상 놀이입니다. 조선시대 문헌과 민속 기록을 바탕으로 팽이놀이가 잊혀진 전통놀이로 분류된 구조적 이유를 찾아봅니다. 이 글은 팽이놀이가 어떤 맥락에서 형성되고 전승되었는지를 문헌 자료와 민속 자료를 바탕으로 살피며, 왜 팽이놀이가 ‘잊혀진 전통놀이’로 분류될 수밖에 없는지를 분석합니다. 이를 통해 놀이가 사라진 것이 아니라 기록되지 않았던 것일 수 있음을 설명합니다.

     

    팽이놀이는 왜 기록되지 않았는가, 일상 속에서 잊혀진 전통놀이의 역사

    팽이놀이의 역사적 존재와 놀이 문화

    팽이놀이(한국어로 팽이치기, 영어로 Paengi Chigi)는 나무로 만든 회전 장난감인 팽이를 팽이줄이나 막대를 사용해 돌리는 전통 놀이입니다. 팽이를 감싼 줄을 강하게 당겨 땅에 놓으면 회전하면서 오래 도는 것이 목적이며, 상대의 팽이를 쓰러뜨리거나 더 오래 도는 팽이를 겨루는 방식이 대표적입니다.

    팽이는 전 세계적으로 오랜 역사를 지닌 놀이도구인데, 고대 이집트·중국·유럽 등에서 여러 형태의 팽이 유물이 발견되기도 합니다. 한국에서도 팽이놀이는 과거부터 어린이뿐 아니라 성인까지 즐겼던 놀이로 자리 잡았으며, 특히 겨울철 얼음판이나 마당 등에서 팽이를 돌리며 경쟁하였습니다.

    팽이의 재료는 전통적으로 목재를 활용했으며, 단단하고 회전성이 좋은 목재가 선호되었습니다. 이는 상당한 제작 기술과 감각이 필요한 부분이기도 했습니다.

    팽이놀이가 기록 아닌 기억 속 놀이로 남은 이유

    놀이 자체가 문헌 기록의 대상이 되기 어려웠다

    조선 후기의 세시풍속서와 민속 기록에서 팽이놀이가 본격적으로 다뤄지지 않은 이유는, 놀이의 존재 여부가 아니라 기록 기준의 문제였습니다. 『동국세시기』, 『열양세시기』, 『경도잡지』와 같은 문헌은 놀이를 “언제, 어디서, 어떤 의미로 행해지는가”라는 틀 안에서만 기록했습니다. 즉, 명절이나 절기와 결합되지 않고, 마을 단위 의례나 공동체 행위로 고정되지 않은 놀이는 기록 가치가 낮다고 판단되었습니다. 팽이놀이는 특정 명절에만 행해지는 놀이가 아니라, 겨울철 마당·골목·얼음판 등 일상 공간에서 수시로 이루어진 놀이였기 때문에 이러한 기록 체계에 포착되기 어려웠습니다.

    이 구조 속에서 팽이놀이는 ‘존재했지만 정리되지 않은 놀이’로 남았고, 그 결과 오늘날 잊혀진 전통놀이로 인식되게 되었습니다.

    조선시대 및 후기의 여러 세시풍속서나 민속 조사는 삶의 다양한 측면을 기록했지만, 놀이의 획일화된 규칙과 고정된 맥락이 있는 놀이만 상세하게 남기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팽이놀이는 정해진 계절·의례·공식 행사와 직접적으로 연동되지 않은 자율 놀이로 행해졌기 때문에, 당시 기록자들은 놀이의 구체적 규칙이나 진행을 기술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습니다.

    팽이놀이는 오늘날 어린이 놀이로 인식되지만, 전통사회에서는 반드시 연령이 제한된 놀이가 아니었습니다. 민속 조사 자료를 보면, 팽이놀이는 아이들뿐 아니라 청년층과 성인 남성들도 즐겼던 놀이였습니다. 특히 겨울철 농한기에는 어른들이 직접 팽이를 깎아 만들고, 아이들과 함께 놀이를 즐기는 모습이 자연스럽게 나타납니다.

    그러나 기록자들은 놀이를 계층·연령·성별에 따라 위계화하여 인식하는 경향이 강했습니다. 성인 남성의 공식적 경쟁 놀이(씨름, 격구)는 기록되었지만, 아이와 어른이 함께 어울리는 일상 놀이는 ‘교화 가치가 낮은 행위’로 간주되어 상세 기록에서 제외되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팽이놀이는 점차 ‘아이들만의 놀이’로 축소 인식되었고, 이는 놀이의 문화적 위상을 낮추는 결과로 이어졌습니다. 

    이러한 놀이들은 놀이가 일상적이라는 이유로 사료나 기록으로 남기기 어려웠습니다. 이와 같은 현상은 놀이 기록의 제한성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기록 자료는 놀이를 사회적 의미나 공동체 행사와 연결된 대상으로 남기는 경향이 강했으며, 자율적이고 일상적인 놀이는 문서화가 쉽지 않았습니다.

    팽이놀이는 경쟁 중심 놀이와는 다른 성격이었다

    세시풍속서와 같은 전통 기록에는 씨름, 윷놀이, 투호처럼 승패·규칙이 명확하며 공동체적 의미가 부각되는 놀이들이 주로 등장합니다. 이런 놀이들은 규칙을 문장으로 정리하기 용이하고, 기록자가 사회적 의미를 부여하기 쉽습니다. 예컨대 씨름은 힘과 기상의 상징으로, 윷놀이는 공동체 화합의 상징으로 해석되어 문헌상 여러 차례 언급됩니다.

    반면 팽이놀이는 상대방 팽이를 쓰러뜨리는 경쟁적 요소도 있지만 대체로 과정 중심의 즐거움에 초점이 맞춰졌습니다. 나아가 팽이의 형태나 놀이 방식이 지역·상황에 따라 다양하게 변형되었기에, 기록자가 기준을 잡아 정리하기 어려운 놀이였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 같은 성격은 팽이놀이가 경쟁 중심 놀이는 맞지만, 체계적 문서화에는 적합하지 않았던 놀이였음을 시사합니다.

    일상과 놀이의 결합 

    팽이놀이는 특별한 장소나 의례 공간보다는 일상의 공간에서 자연스럽게 이뤄졌습니다. 얼음판이 있는 겨울철 마을의 골목이나 논두렁, 또는 마당 같은 열린 공간에서 팽이놀이가 즐겨졌습니다. 얼음과 같은 평평한 자연 환경은 팽이가 오래 도는 데 유리했으며, 겨울이라는 계절적 특성은 팽이놀이가 계절 놀이로 자리 잡는 데 영향을 줬습니다.

    팽이놀이가 급격히 잊혀진 전통놀이로 전환된 결정적 시점은 근대 이후입니다. 일제강점기 이후 학교 중심 생활이 확산되면서, 놀이 공간은 마당과 골목에서 운동장과 교실로 이동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팽이놀이처럼 비정형적이고 환경 의존적인 놀이는 학교 교육 체계에 편입되기 어려웠습니다. 또한 도시화로 인해 흙바닥, 얼음판, 넓은 마당이 사라지면서 팽이놀이가 자연스럽게 이루어질 공간 자체가 급감했습니다. 기록이 없던 놀이는 공간이 사라지는 순간 함께 소멸되었고, 이는 구술 전승에 의존하던 놀이의 취약성을 드러낸 사례입니다. 결국 팽이놀이는 놀이 자체의 매력이 사라져서가 아니라, 놀이를 가능하게 했던 환경이 붕괴되면서 잊혀진 전통놀이로 전환되었습니다. 기록의 측면에서는 이러한 즉흥적이고 환경에 의존적인 놀이는 문서화보다는 사람들의 구전 기억으로 남을 가능성이 컸습니다.

    구술 전승과 기록의 불일치

    팽이놀이는 많은 경우 구술 전승을 통해 세대를 이어왔습니다. 구술 전승이란 놀이의 규칙과 방법이 문서로 기록되지 않고 체험과 말로 전달되는 방식입니다. 이러한 전달 방식은 공동체가 유지되는 동안에는 놀이를 생생하게 유지하는 데 강력하지만, 폭넓은 기록 자료로 남기는 데는 취약합니다. 놀이의 규칙 자체가 상황과 참여자에 따라 달라질 수 있기 때문에, 극히 상이한 방식의 놀이들이 한 이름으로 묶여 전승되기도 했습니다.

    이런 구술 중심 놀이들은 시간이 흐르며 구체적 문서 기록 없이 ‘생활 속 행동’으로만 남아 결과적으로 비교적 더 많은 부분이 잊혀진 전통놀이로 인식되게 만듭니다.

    현대적 재현과 문화적 의미

    오늘날 팽이놀이는 주로 겨울철 방학이나 민속체험 행사, 교육 프로그램에서 소개되고 있습니다. 현대식 팽이는 플라스틱이나 금속 부품을 활용하기도 하며, 어린이들이 체험 활동으로 즐기기도 합니다.

    하지만 현대 재현 방식은 과거 일상에서 자연스럽게 이어졌던 놀이의 맥락(계절, 공동체, 공간 조건 등)을 온전히 담고 있지 못합니다. 팽이놀이의 사회·문화적 기능은 놀이하는 과정 자체에 있었으며, 단지 오래 도는 팽이를 겨루는 것 이상의 신체적 감각과 공동체적 놀이 경험을 포함했습니다.

    팽이놀이가 잊혀진 전통놀이가 된 구조적 이유

    팽이놀이가 잊혀진 전통놀이가 된 이유를 구조적 측면에서 살펴보겠습니다. 첫째 기록 체계의 한계입니다. 놀이가 문서화되기 위한 고정된 규칙과 의미 부여가 어려워 기록으로 연결되지 못했습니다. 둘째 자율성과 즉흥성입니다. 그때마다 상황과 누가 참여하느냐에 따라 놀이 방식이 달라져 구체화되지 못했습니다. 세째 공간과 계절 의존성이 있어서입니다. 주변 환경에 따라 놀이 방식이 변형되면서 문서화 되는데 어려움이 있어 대상에서 배제되었습니다. 네째 구술 중심 전승으로 기록보다는 체험과 구전으로 전달되고 이어졌습니다.

    이러한 이유들은 팽이놀이가 사라진 놀이로 오해받게 했지만, 실제로는 문헌에 정리되지 않아 ‘전통놀이’의 대표 명단에서 빠진 놀이에 가깝습니다. 따라서 팽이놀이는 잊혀진 것이 아니라, 기록의 범주 밖에서 존재해 온 생활 놀이로 이해해야 합니다.

    기록되지 않은 문화의 가치와 재조명

    팽이놀이는 단순한 유희가 아니라, 세대 간 신체 감각과 놀이 경험을 공유하는 생활 문화였습니다. 민속학적·문화사적 분석을 통해 팽이놀이가 어떤 과정을 거쳐 오늘날의 모습에 이르렀는지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잊혀진 전통놀이를 다시 기록하는 일은 놀이를 복원하는 과정이 아니라, 문화가 어떻게 기록되고 배제되는지를 성찰하는 과정입니다. 팽이놀이는 이제 문헌과 구전, 그리고 체험을 통해 재조명되어야 할 전통놀이입니다. 재조명되는 잊혀진 전통놀이는 단순히 과거를 체험하며 재현하는 것에 머무르지 않습니다. 오늘 이 글을 통해 우리는 그 시대의 생활 방식과 공동체 구조를 이해하게 됩니다. 그리고 어른과 아이가 함께 놀이에 참여함으로써 세대 간 관계와 소통 방식으로 놀이가 창구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