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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심기와 타작 속에 남은 노동형 잊혀진 전통놀이

📑 목차

    농경 사회의 모심기와 타작 전통놀이

    한국 전통 농경 사회에서는 모심기와 타작이 단순한 노동이 아니었습니다. 농번기에는 마을 공동체가 함께 모여 일했고, 그 과정에서 놀이적 요소가 자연스럽게 결합된 민속적 노동 구조가 형성되었습니다. 봄에는 모심기를 하고 여름이면 보리타작을 했습니다. 가을에는 콩을 타작했습니다. 어릴적 시골에서 자란 대부분의 사람들은 모내기와 타작을 기억할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모심기나 타작을 ‘노동’으로만 이해하기 쉽지만, 과거에는 이 노동이 놀이의 구조와 리듬을 갖춘 생활 문화의 한 형태였습니다. 이 글은 모심기, 타작 속 놀이 요소를 전통놀이의 관점에서 재해석하며, 왜 이러한 행위가 공식적인 ‘놀이’로 기록되지 않고 잊혀진 전통놀이로 남게 되었는지를 문헌과 민속사의 자료를 토대로 분석합니다.

     

    모심기와 타작 속에 남은 노동형 잊혀진 전통놀이

    농요와 모심기, 타작 소리의 기원

    농요(農謠)는 농부들이 농사일을 하면서 불렀던 노동요로, 힘든 일의 피로를 덜고 공동체의 결속을 다지는 역할을 했습니다. 이 농요는 단순한 노래가 아니라 모심기, 논매기, 타작 등 일련의 작업 동작과 리듬을 결합한 노동 음악이었습니다. 경남 고성 지역의 ‘고성농요’는 모내기와 탈곡 같은 작업을 포함한 다양한 농사 과정에서 불리던 노래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농요는 농민들이 공동으로 부르며 힘을 얻고 수고를 나누는 방식으로, 노동 효율을 높이기 위해 반복적이고 리드미컬한 구조를 가진 노랫말로 이루어졌습니다.

    예천 통명농요는 예천 지역에서 전승되어 온 농요로, 모심기 소리, 논매기 소리, 타작 소리 등 농사 절차에 따라 다양한 소리가 불렸습니다. 농요단이 1979년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에서 대통령상을 수상한 사실은, 이러한 농요가 단순 노동이 아니라 공동체 예술적 성격을 가진 문화 자산이었음을 증명합니다.

    농요의 존재는 모심기와 타작이 단지 농사일이 아니라 공동체가 함께 반복적으로 행하는 리듬적 노동이며, 놀이적 요소가 결합된 전통적 노동 문화였음을 보여줍니다.

    잊혀진 전통놀이 모심기, 타작의 놀이적 구조

    규칙과 리듬

    모심기와 타작은 농업이라는 필수 노동 과정이지만, 그 속에는 규칙적 동작과 리듬이 들어 있습니다. 같은 동작을 반복하는 과정에서 농민들은 입을 맞추고 리듬을 형성하는 노동 노래를 불렀습니다. 이러한 구조는 신체적 피로를 분산시키는 동시에 일의 흐름을 유지하는 놀이적 장치였습니다. 농요는 통상적으로 선후창(call-and-response) 방식으로 진행되었습니다. 한 사람이 앞소리를 시작하면 여러 사람이 후렴을 받으며 따라 부르며, 동작과 노랫말이 자연스럽게 결합했습니다.

    모심기 소리는 단순히 모를 심는 동작을 노래로 표현한 것이 아니라, 동작의 속도를 결정하고 참여자 모두가 호흡을 맞추는 역할을 했습니다. 예를 들어, 양손으로 모를 잡고 뒤로 물러서며 흥을 돋우는 소리는 그 자체로 놀이적 반복 구조를 띠었습니다. 동네 어르신들이 모내기를 할 때 앞에서 소리하면 뒤에서 따라 부르며 몸의 고단함을 리듬과 함께 즐거움으로 승화시키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상호작용과 공동체성

    모심기, 타작 속 노동은 혼자 하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함께 모여 농사 일을 했으며, 농사일의 거의 모든 과정에서 노래, 몸짓, 소리와 함께 상호 작용이 이루어졌습니다. 이런 상호작용은 경쟁이나 승패보다도, 공동으로 해를 완수하는 데 주안점을 둔 자율 놀이 구조와 유사했습니다. 이는 현대 놀이 이론에서 말하는 협동적 놀이(cooperative play)와도 맞닿아 있습니다.

    또한 농사 과정에서 농민들은 주변 요소를 놀이적 장치로 활용했습니다. 예컨대 밭두렁을 이용한 즉흥 경쟁이나, 벼 이삭을 다듬으며 노랫말을 응용한 흥겨운 변주 등은, 관습적으로 반복되어 공동체 기억으로 남은 놀이적 요소들입니다.

    모심기, 타작과 잊혀진 전통놀이 기록되지 않은 이유

    모심기와 타작 속 놀이 요소는 분명 놀이 구조를 갖췄지만, 전통 놀이 목록에서 빠져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놀이의 경계가 노동과 분리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과거 조선시대나 근대 이전 한국 사회에서 놀이와 노동은 뚜렷이 분리되지 않았습니다. 노동이 곧 생존이었기 때문에, 노동 속에서 노래하고 즐기는 행위 역시 놀이의 일부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리고 기록자의 관점 문제 때문입니다. 조선 후기의 기록이나 민속 조사의 대부분은 특별한 의례, 명절, 의식 중심으로 놀이를 기록했습니다. 반면 일상의 노동 속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놀이적 행위는 기록 우선순위에서 낮았습니다, 역시 놀이로 인정받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놀이 요소들로 인해 공식 기록에서 배제된 잊혀진 전통놀이가 된 것입니다.

    잊혀진 전통놀이로 본 농경 놀이의 사회적 의미

    풍년 기원과 감정 처리

    농요나 모심기, 타작 속 놀이적 요소는 모두 풍년을 기원하고 정서적 긴장을 완화하기 위한 장치였습니다. 농사일은 단순 노동이 아니라 공동체의 생존과 연결된 구조였습니다. 농요는 단순히 고된 노동을 잊는 수단이 아니라, 풍년을 바라는 마음과 공동체가 서로를 격려하는 의례적 요소를 담고 있습니다.

    타작이 끝난 뒤에는 흔히 음식이나 술을 나누며 작은 잔치를 벌였습니다. 이는 계절 노동이 종료되었음을 기념하는 의례적 놀이였으며, 공동체 구성원 간의 사회적 유대감을 강화하는 기회였습니다.

    놀이와 자연의 리듬

    모심기와 타작 속 놀이적 구성은 자연의 계절적 리듬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모를 심는 시기, 논을 매는 시기, 벼를 탈곡하는 시기 등에는 각기 다른 농요가 불렸고, 이는 자연의 흐름과 인간의 활동이 놀이와 노동의 리듬으로 맞물린 사례입니다.

    이런 리듬적 특성은 전통 사회에서 뛰어난 ‘기억 장치’ 역할을 했습니다. 노랫말이나 장단이 계절과 행위에 결합하면서, 농사 과정 전체가 하나의 생활 놀이 시스템로 작동했습니다.

    모심기, 타작 놀이 지역 사례

    전통 농요는 여전히 다양한 지역에서 전승되고 있습니다. 고성농요는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되어 모내기 소리, 탈곡 소리 등 농사일의 여러 단계를 노래로 보존하고 있습니다. 또한 예천 통명농요는 대통령상 수상으로 전통적 가치를 인정받았으며 모심기와 타작 소리가 연속적으로 구성된 노래를 통해 농사일과 놀이적 요소를 함께 보여줍니다.

    현대에도 농요 축제가 여러 지역에서 개최되고 있으며, 모심기와 타작 등 농경 문화가 놀이로 재현되는 현상이 나타납니다. 이러한 축제는 과거 잊혀진 전통놀이가 다시 살아나는 중요한 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천 조장모심기놀이는 노동요에서 연희 민속놀이로 전환된 모심기 의례로 경상남도 사천시 곤명면 조장리에서 전승되어 온 민속놀이입니다. 모심기라는 농경 노동 과정을 놀이와 연희 형식으로 재구성한 사례입니다. 이 놀이는 단순한 재현 놀이가 아니라, 과거 농촌 사회에서 집단 노동을 유지하기 위해 형성된 노동요·의례·놀이가 결합된 복합적 문화 양식을 보여줍니다. 사천 조장모심기놀이에 대해 보다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발생 배경과 농경 공동체 구조

    전통 농경 사회에서 모심기는 많은 인력이 동시에 투입되어야 하는 대표적인 집단 노동이었습니다. 모가 자라면 못자리에서 논으로 옮겨 심는 작업을 단기간에 마쳐야 했기 때문에, 두레나 품앗이와 같은 협업 구조가 필수적이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사람들은 작업의 리듬을 맞추고 피로를 덜기 위해 농요를 불렀으며, 이는 자연스럽게 놀이적 요소를 포함하게 되었습니다.

    사천 조장모심기놀이는 이러한 실제 노동 현장에서 불리던 모심기 농요와 작업 동작을 토대로 형성되었습니다. 즉, 이 놀이는 처음부터 ‘보여주기 위한 놀이’가 아니라 일을 잘하기 위해 만들어진 생활 속 놀이였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고 볼 수 있습니다.

    연희화 과정과 전승의 계기

    사천 조장모심기놀이의 정확한 기원 시기는 알 수 없으나, 지역 주민들의 증언과 전승 양상을 볼 때 상당히 오래전부터 이어져 온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다만 산업화와 농업 기계화로 인해 실제 모심기 과정에서 농요가 사라지면서, 이 놀이 역시 점차 소멸 위기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1992년 경상남도 도민속경연대회에 참가해 장려상을 수상한 것을 계기로, 사천군(현 사천시)의 지원을 받아 놀이의 형식과 구성 요소가 체계화되었습니다. 이후 사천 조장모심기놀이는 노동 현장의 기억을 보존하는 연희 민속놀이로서 본격적인 보존·전승 단계에 들어서게 되었습니다.

    놀이 도구와 놀이 방법

    사천 조장모심기놀이는 실제 농사에 사용되던 도구를 그대로 활용하는 특징을 지닙니다. 못줄, 쟁기, 써레, 모판, 모 등 모심기 관련 농기구와 함께 꽹과리, 징, 장구, 북, 소고 등의 풍물 악기가 놀이 도구로 사용됩니다.

    이러한 도구 구성은 이 놀이가 노동과 분리된 별도의 오락이 아니라, 농경 노동 그 자체를 연희화한 놀이임을 분명히 보여줍니다.

    사천 조장모심기놀이는 실제 모심기 작업의 순서를 그대로 반영한 네 개의 마당으로 구성됩니다. 첫째는 쟁기질마당으로, 논에 물을 대고 소를 부려 논을 가는 장면을 연행합니다. 둘째는 써레질마당으로, 써레를 이용해 논바닥을 고르게 다지는 과정을 표현합니다. 셋째는 모찌기마당으로, 모판에서 모를 찌는 준비 과정입니다. 넷째는 모심기과장으로, 모를 논에 심으며 농요를 부르는 핵심 장면입니다.

    이 과정에서 못줄을 잡고 모를 나르는 일은 남성이 담당하고, 실제 모심기 작업은 여성이 맡는 역할 분담이 나타납니다. 이는 당시 농촌 사회의 노동 분업 구조를 반영하며, 여성들이 농요를 통해 삶의 애환과 감정을 집단적으로 표현하던 공간이었음을 보여줍니다.

    사천 조장모심기놀이에서 불리는 「모심기노래」는 선소리와 후렴으로 구성되어 작업의 박자를 맞추는 기능을 합니다. 동시에 풍년 기원, 노동의 고됨, 사랑과 이별, 사회 풍자, 해학적인 표현 등이 가사에 담겨 있어 놀이적 성격을 강화합니다.

    이러한 노랫말은 단순한 노동요를 넘어, 노동 현장을 감정 해소와 공동체 소통의 장으로 전환시키는 역할을 수행합니다. 반복되는 고된 노동 속에서 개인의 감정을 노래로 풀어낸다는 점에서, 모심기놀이는 농촌 공동체의 정서 조절 장치 역할을 했습니다.

    노동에서 발생한 잊혀진 전통놀이의 문화적 가치

    전통 사회에서 놀이는 노동과 분리된 행위가 아니라, 노동을 지속하기 위한 필수적인 장치였습니다. 모심기놀이는 농요를 중심으로 한 리듬, 선후창 구조, 역할 분담을 통해 작업의 효율을 높였으며, 동시에 참여자들의 피로와 감정 부담을 완화하는 기능을 수행했습니다. 이러한 구조는 타작놀이, 상여놀이와 같은 다른 농경 노동 놀이와도 공통점을 지닙니다. 반복적이고 힘든 노동 속에서 놀이 요소를 결합함으로써 공동체의 긴장을 풀고 결속을 유지하는 방식이었습니다.

    사천 조장모심기놀이는 화려한 연희를 목적으로 한 놀이가 아니라, 실제 노동 과정을 그대로 반영한 현장 기반의 잊혀진 전통놀이입니다. 쟁기질, 써레질, 모찌기, 모심기라는 농사 순서가 놀이의 마당 구성으로 이어지며, 이는 노동과 놀이가 하나의 흐름 안에서 작동했음을 보여줍니다. 이러한 점에서 이 놀이는 단순한 재현 놀이가 아니라 농촌 공동체의 생활 방식 자체를 담고 있습니다.

    오늘날 기계화된 농업 환경에서는 이러한 모심기놀이와 타작놀이가 더 이상 필요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노동과 결합된 전통놀이는 빠르게 사라졌고, 현재는 잊혀진 전통놀이라는 이름으로 기록과 보존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놀이는 단절된 과거의 유물이 아니라, 공동체가 노동을 견디고 삶을 유지하기 위해 만들어 낸 실천적 문화였습니다.

    사천 조장모심기놀이는 농경 사회의 노동형 잊혀진 전통놀이가 지닌 본질을 잘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놀이를 통해 노동의 고됨을 나누고, 노래로 감정을 조율하며, 공동체 전체가 하나의 리듬으로 움직였던 생활 민속의 흔적입니다. 이러한 점에서 이 놀이는 단순한 전통놀이가 아니라, 한국 농촌 사회의 집단적 삶을 이해하는 중요한 문화 자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