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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륙 놀이
쌍륙은 문헌과 그림 속에 분명히 존재했던 놀이이지만, 오늘날에는 실제 놀이 방식이 공유되지 않는 잊혀진 전통놀이로 분류됩니다. 이는 쌍륙이 기록에서 사라졌기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기록 속에 머문 채 생활 전승으로 이어지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쌍륙은 일정한 도구와 공간, 여유 있는 시간이 필요했던 놀이였고, 이러한 조건은 근대 이후 급격히 변화한 생활 환경과 맞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쌍륙은 ‘알려진 놀이’였지만 ‘계속 놀아지는 놀이’로는 유지되지 못했습니다. 이 글은 쌍륙놀이가 단순한 옛날 놀이의 하나가 아니라, 동아시아 문화권에서 장기간에 걸쳐 전파·변형·정착된 전통 보드게임이라는 점을 문헌과 시각 자료를 통해 정리하기 위해 작성되었습니다. 쌍륙은 전통놀이 중에서도 비교적 이른 시기에 외부 문화와 접촉하며 형성된 사례에 해당합니다. 그러나 현대에 이르러서는 생활 속 놀이로는 거의 사라지고, 교육·전시·체험의 영역에서만 제한적으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쌍륙은 기록이 풍부함에도 불구하고 잊혀진 전통놀이가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로, 전통놀이가 사라지는 과정을 구조적으로 분석하는 데 중요한 기준점을 제공합니다.

쌍륙의 기원과 문헌 속 쌍륙의 존재 방식
쌍륙놀이는 중국 한무제 시기, 서역 문화가 중국으로 유입되던 과정에서 전래된 놀이로 추정됩니다. 당시 중국은 실크로드를 통한 물적·문화적 교류가 활발하던 시기였으며, 주사위와 말 이동을 결합한 보드형 놀이 문화가 확산되었습니다. 이러한 놀이 양식은 이후 삼국시대 백제를 통해 한반도로 전해졌고, 다시 일본으로 건너가 ‘스고로쿠’라는 이름으로 정착했습니다.
쌍륙이 일본으로 전해져 ‘스고로쿠’로 발전한 사례는 비교 연구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집니다. 일본에서는 스고로쿠가 귀족 놀이에서 점차 대중화되며 규칙이 정리되고, 놀이판과 말의 형태가 표준화되었습니다. 이는 놀이가 사회적으로 허용되고 확산될 경우, 기록과 구조가 자연스럽게 정리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반면 조선에서는 쌍륙이 그러한 경로를 밟지 못했습니다. 이 차이는 놀이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 놀이를 바라보는 사회적 태도의 차이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이 차이는 쌍륙이 잊혀진 전통놀이가 된 이유가 놀이의 완성도나 재미의 문제가 아니라, 놀이를 받아들이고 지속시키는 사회적 환경의 문제였음을 분명히 보여줍니다.
이 비교는 쌍륙에 대한 현대적 해석할 때 일본 사례를 그대로 적용하는 것이 왜 위험한지를 설명해 줍니다. 일본의 스고로쿠는 일본 사회 안에서 변형·정착된 놀이이며, 조선의 쌍륙과는 동일선상에 놓을 수 없습니다. 따라서 쌍륙에 대한 현대적 해석은 비교 자료를 참고하되, 그대로 차용하지 않는 신중한 접근이 필요합니다.
이 전파 경로는 쌍륙이 특정 지역의 고립된 놀이가 아니라, 동아시아 전반의 문화 흐름 속에서 형성된 놀이임을 보여줍니다. 쌍륙은 외래 요소를 포함하고 있었기 때문에, 각 사회의 가치 체계에 따라 다르게 수용되고 변형되었습니다.
쌍륙은 고려시대에도 실제로 행해졌음을 이규보의 시를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는 쌍륙이 단순한 금기나 이론 속 놀이가 아니라, 지식인 계층의 생활 속 오락으로 존재했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입니다. 문헌과 풍속화를 종합하면, 쌍륙은 특정 계층에만 한정된 놀이로 보기는 어렵습니다. 신윤복과 김득신의 풍속화 속 쌍륙 장면은 실내 공간에서 비교적 여유 있는 환경 속에서 놀이가 이루어졌음을 보여줍니다. 이는 쌍륙이 야외에서 즉흥적으로 이루어지는 아동 놀이와는 성격이 다르다는 점을 시사합니다. 쌍륙은 일정한 도구와 공간이 필요했고, 놀이에 참여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요구되었습니다. 풍속화 속 쌍륙은 실제 놀이 장면을 시각적으로 전달하는 자료로서, 문헌 기록의 한계를 보완하는 역할을 합니다. 이를 통해 쌍륙이 특정 계층에만 제한된 놀이가 아니라, 비교적 폭넓게 향유되었음을 추정할 수 있습니다.
반면, 이러한 놀이 환경은 세대 간 자연스러운 전승에는 불리하게 작용했습니다. 아이들이 일상 속에서 자연스럽게 익히는 놀이가 아니라, 특정 시기와 공간에서 제한적으로 이루어진 놀이였기 때문에 생활 놀이로 고착되기 어려웠습니다. 이는 쌍륙이 조선시대에 널리 알려진 놀이였음에도 불구하고, 근대 이후 빠르게 단절된 구조적 이유 중 하나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생활 속에서 반복되지 못한 놀이는 기록으로는 남을 수 있어도, 다음 세대의 몸과 기억 속에는 자리 잡기 어렵습니다. 쌍륙이 오늘날 잊혀진 전통놀이로 분류되게 된 과정은 바로 이 지점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쌍륙의 놀이적 성격과 사회적 인식
쌍륙은 주사위의 우연성과 말 이동의 전략성이 결합된 놀이로, 단순한 운에만 의존하지 않는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특성 때문에 쌍륙은 집중력과 판단력을 요구하는 놀이로 평가되었으며, 동시에 승패에 따른 긴장감이 강한 놀이이기도 했습니다. 조선 사회에서 쌍륙은 긍정적인 여가 활동으로 인식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사행성에 대한 우려의 대상이 되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인식은 쌍륙이 놀이 문화로 지속되면서도, 제도권 교육이나 공식 문화로는 정착하지 못한 배경을 설명해 줍니다. 즉, 쌍륙은 허용과 경계의 경계선에 놓여 있던 놀이였습니다.
쌍륙은 주사위를 사용하는 놀이 구조로 인해 사행성과 연결되어 인식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주사위를 사용하는 놀이 구조는 놀이 자체보다 결과에 대한 집착을 유발하는 행위로 해석되기 쉬웠습니다. 이러한 인식 속에서 쌍륙은 적극적으로 장려되거나 교육의 대상이 되지 못했고, 결과적으로 놀이를 배워 다음 세대에 전할 구조를 잃게 되었습니다. 이는 쌍륙이 금지된 놀이가 아니라, 방치된 놀이로 사라졌음을 의미합니다. 조선 사회에서 우연성에 의해 결과가 결정되는 행위는 종종 부정적인 시선의 대상이 되었는데 쌍륙 역시 이러한 인식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었습니다. 문헌 속에서 쌍륙이 직접적으로 금지 대상으로 언급되지는 않더라도, 과도한 몰입이나 시간 낭비의 사례로 등장하는 경우가 확인됩니다. 이는 쌍륙이 놀이로서 허용되면서도, 동시에 경계의 대상이 되는 이중적 위치에 있었음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인식은 쌍륙을 금지된 놀이로 만들지는 않았지만, 적극적으로 가르치고 공유할 이유를 약화시켰고, 그 결과 쌍륙은 전승의 주체를 잃은 채 기록 속 놀이로 남게 되었다. 이러한 인식은 쌍륙이 공식 교육이나 제도권 문화로 편입되지 못한 배경이 됩니다. 놀이가 사회적으로 긍정적인 가치만을 지니지 않는다고 판단될 경우, 그 놀이는 기록과 전승의 우선순위에서 밀려나게 됩니다. 쌍륙은 이러한 구조 속에서 살아남기는 했지만, 적극적으로 보호되거나 체계화되지는 못했습니다.
쌍륙은 왜 기록이 풍부했음에도 잊혀진 전통놀이가 되었는가
쌍륙에 대한 기록은 양적으로 적지 않지만, 놀이 규칙을 체계적으로 설명하는 문헌은 거의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는 쌍륙이 기록의 대상이 되는 방식 자체가 놀이 중심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조선시대 문헌에서 쌍륙은 주로 개인 문집, 수필, 시문 속에서 언급됩니다. 이러한 문헌들은 놀이를 설명하기 위해 작성된 것이 아니라, 당시 생활의 한 장면이나 사회 풍속을 언급하는 과정에서 쌍륙을 등장시키는 방식으로 기록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쌍륙은 ‘무엇을 하는 놀이였는가’보다는 ‘그 놀이가 존재했다’는 사실만을 남기게 되었습니다.
또한 조선시대 문헌은 놀이를 독립적인 문화 요소로 분석하는 성격을 갖지 않았습니다. 놀이에 대한 언급은 대부분 도덕적 평가, 사회 풍속 비판, 혹은 개인적 회상의 일부로 포함되었습니다. 이 때문에 쌍륙의 규칙, 승패 방식, 세부 진행 과정은 기록에서 의도적으로 배제되거나 중요하게 다뤄지지 않았습니다. 문헌 기록의 목적과 놀이 기록의 목적이 일치하지 않았다는 점은 쌍륙 연구에서 반드시 고려해야 할 요소입니다. 이는 잊혀진 전통놀이의 생존이 기록의 양에 달려 있지 않으며, 놀이가 생활 속에서 반복되고 공유될 수 있는 환경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줍니다. 쌍륙의 사례는 잊혀져 가는 전통놀이가 문헌에 남았다는 사실만으로는 결코 살아 있는 문화가 될 수 없음을 분명히 드러냅니다.
현대에 이루어지는 쌍륙의 재해석과 활용
오늘날 쌍륙은 과거와 같은 생활 놀이로 완전히 재현되기보다는, 전통문화 교육과 체험 콘텐츠의 형태로 재해석되고 있습니다. 박물관이나 전통문화 체험관에서는 쌍륙을 보드게임 형태로 단순화하여 소개하고 있으며, 학교 교육 현장에서는 전통놀이를 이해하기 위한 교구로 활용되는 사례도 확인됩니다. 이는 쌍륙이 더 이상 자연스럽게 전승되는 놀이가 아니라, 기록과 자료를 바탕으로 재구성된 문화 콘텐츠로 기능하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활용 방식은 전통놀이 완전한 재현이 반드시 과거와 동일한 형태를 목표로 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을 보여줍니다. 잊혀져 가는 전통놀이를 완전하게 재현하는 것이 ‘옛것을 그대로 되살리는 작업’이 아니라, 현대 사회에서 의미를 가질 수 있는 구조로 재해석하는 과정임을 보여줍니다. 쌍륙은 전통놀이 복원의 대상으로 단순화되기보다는, 기록의 공백과 해석의 차이 자체가 의미가 되는 잊혀진 전통놀이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쌍륙 사례가 전통놀이 작업에 주는 교훈
쌍륙은 잊혀져 가는 전통놀이 기록에서 중요한 기준점을 제공합니다. 이 놀이는 기록이 충분히 남아 있음에도 불구하고, 생활 놀이로는 단절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이는 전통놀이 보존에서 단순히 자료의 양이 아니라, 놀이가 놓여 있던 사회적 환경과 인식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시사합니다. 쌍륙 사례를 통해 우리는 전통놀이를 단순히 ‘남아 있느냐, 사라졌느냐’의 문제로 판단할 수 없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됩니다. 쌍륙은 전통놀이 중에서도 비교적 자료가 풍부한 편에 속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거와 동일한 형태로의 완전한 재현은 어렵습니다. 이는 놀이가 기록만으로 유지될 수 없고, 생활 속 맥락과 함께 전승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동시에 쌍륙은 문헌, 회화, 비교문화 자료를 종합적으로 분석하면 놀이의 성격과 의미를 상당 부분 정리할 수 있다는 점도 함께 보여줍니다. 이 사례는 잊혀져 가는 전통놀이가 재현 여부의 문제가 아니라, 어떤 방식으로 현재와 연결할 것인가의 문제임을 분명히 합니다. 쌍륙에 대한 기록은 잊혀져 가는 전통놀이를 단순한 추억이 아닌, 분석과 해석의 대상으로 다루어야 할 이유를 잘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이 글을 준비하면서 쌍륙 놀이를 알게 되었고 기록이 전부가 아님을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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