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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 제기 : 왜 잊혀진 전통놀이는 기록이 적은가
오늘날 잊혀진 전통놀이는 ‘오래된 놀이’, ‘아이들이 하던 옛놀이’, 혹은 ‘복원해야 할 문화유산’으로 인식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조선시대 문헌을 살펴보면, 우리가 알고 있는 많은 잊혀진 전통놀이는 놀이 자체를 설명하는 기록으로 거의 등장하지 않습니다. 일부 놀이는 이름만 남아 있거나, 도덕적 경계의 예시로 짧게 언급될 뿐입니다. 규칙, 진행 방식, 참여 인원, 놀이가 이루어진 공간에 대한 구체적인 기록은 매우 드뭅니다.
이러한 현상은 단순히 기록 기술이 부족했기 때문이 아니라, 전통놀이가 기록의 대상이 되는 조건 자체를 충족하지 못했기 때문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 글은 잊혀진 전통놀이가 왜 ‘놀이’로서 기록되지 못했는지를 문헌의 성격, 기록 주체의 인식, 놀이의 구조적 특성을 중심으로 분석하고자 합니다.

조선시대 기록 문화에서 ‘놀이’의 위치
조선시대 기록물은 대부분 관료, 학자, 문인 계층에 의해 생산되었습니다. 이들이 기록한 대상은 정치, 행정, 예제(禮制), 도덕, 역사적 사건, 개인의 수양과 관련된 내용이 중심이었습니다. 이러한 기록 문화 속에서 놀이란 기록할 가치가 낮은 일상 행위로 인식되었습니다.
『조선왕조실록』, 개인 문집, 유교적 교훈서 등을 살펴보면, 놀이가 등장하는 경우는 대부분 문제적 행위로 다뤄집니다. 예를 들어 투전, 저포, 쌍륙과 같은 놀이는 사행성과 연결되어 비판의 대상이 되었고, 아이들의 놀이 역시 ‘쓸모없는 유희’ 혹은 ‘공부를 방해하는 요소’로 언급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이 과정에서 기록자는 놀이를 문화 현상으로 분석하지 않았고, 놀이의 구조나 규칙을 남길 필요성도 느끼지 않았습니다. 즉, 잊혀진 전통놀이는 기록자의 관점에서 설명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판단해야 할 대상이었으며, 이로 인해 놀이 자체는 기록의 중심에서 밀려나게 됩니다. 실제 문헌을 살펴보면 놀이를 지칭하는 표현 자체가 이미 가치 판단을 내포하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희희락락하다’, ‘잡기(雜技)에 빠지다’, ‘유희에 탐닉하다’와 같은 표현은 놀이를 중립적 활동이 아닌, 절제되지 않은 행동으로 규정합니다. 이는 놀이가 하나의 사회적 기능이나 문화 현상으로 인식되기보다는, 통제의 대상 또는 경계해야 할 행위로 분류되었음을 보여줍니다. 이러한 언어적 태도는 놀이를 설명하거나 구조화할 필요성을 애초에 제거하며, 기록이 이루어질 여지를 좁히는 역할을 했습니다.
놀이의 전승 방식과 기록 부재의 구조
전통놀이는 대부분 구전과 반복적 체험을 통해 전승되었습니다. 아이들은 놀이를 글로 배우지 않고, 또래의 행동을 관찰하고 따라 하면서 익혔습니다. 이러한 전승 방식은 놀이를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데에는 효과적이었지만, 기록으로 남기기에는 매우 불리한 구조였습니다. 또한 놀이의 규칙이 문자로 고정되지 않았다는 점은 기록자에게 추가적인 부담을 주었습니다. 동일한 놀이가 지역과 시기에 따라 다른 방식으로 진행될 경우, 어느 하나를 ‘정본’으로 삼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문헌 기록은 통일성과 재현 가능성을 전제로 하지만, 전통놀이는 그 전제 자체를 거부하는 성격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이로 인해 놀이를 기록하는 행위는 단순한 서술이 아니라 해석과 선택을 동반하게 되었고, 이는 기록자가 놀이를 아예 기록하지 않는 방향을 택하게 만든 요인이 되었습니다.
예를 들어 비석치기, 자치기, 공기놀이, 굴렁쇠 놀이는 명확한 규칙서가 존재하지 않았으며, 지역과 집단에 따라 방식이 조금씩 달랐습니다. 이러한 유동성은 놀이를 하나의 고정된 형태로 정의하기 어렵게 만들었고, 기록자의 입장에서는 정리하기 애매한 대상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놀이는 규칙의 부재라기보다, 규칙이 문자화될 필요가 없었던 생활 놀이였다는 점에서 기록 문화와 구조적으로 충돌했습니다.
문헌은 일반적으로 변하지 않는 제도나 규범을 기록하는 데 적합합니다. 반면 놀이처럼 상황과 환경에 따라 달라지는 활동은 기록의 우선순위에서 자연스럽게 밀려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놀이가 기록될 때의 왜곡된 방식
그렇다고 해서 놀이가 전혀 기록되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문제는 놀이가 놀이로 기록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조선시대 문헌에서 놀이가 등장하는 대표적인 방식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도덕적 경계의 사례로 등장하는 경우입니다. 『속대전』이나 각종 금령 기록에서는 특정 놀이가 사회 질서를 해칠 수 있다는 이유로 금지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때 기록의 초점은 놀이의 방식이 아니라, 놀이가 초래하는 부정적 결과입니다.
둘째, 문학적 장치로 사용되는 경우입니다. 『만복사저포기』에서 저포놀이는 이야기 전개를 위한 소재로 등장하지만, 실제 놀이의 규칙이나 구조는 거의 설명되지 않습니다. 놀이 자체보다 상징적 의미가 강조됩니다.
셋째, 풍속의 단편적 묘사로 언급되는 경우입니다. 특정 계절이나 명절 풍경을 설명하면서 놀이 이름이 나열되기도 하지만, 이 역시 놀이에 대한 분석이라기보다는 배경 설명에 가깝습니다.
이러한 방식은 놀이를 기록으로 남겼지만, 동시에 놀이의 실체를 흐리게 만드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이런 기록 방식은 결과적으로 놀이를 실제 생활 속 행위가 아닌, 부차적이고 파편적인 정보로 남게 만들었습니다. 놀이가 어떤 사회적 맥락에서 이루어졌는지, 누가 참여했고 어떤 관계를 형성했는지는 기록되지 않은 채, 이름이나 평가만이 남았습니다. 이로 인해 현대에 잊혀진 전통놀이를 접할 때, 우리는 놀이를 하나의 ‘완성된 콘텐츠’로 오해하거나, 특정 의미만을 과도하게 부여하는 경향을 갖게 되었습니다.
기록 주체와 잊혀진 전통놀이 참여자의 분리
잊혀진 전통놀이 기록이 부족한 또 하나의 중요한 이유는 놀이를 기록한 사람과 놀이를 실제로 즐긴 사람이 달랐기 때문입니다. 조선시대 문헌을 남긴 계층은 주로 지식인 남성이었으며, 전통놀이의 주요 참여자는 아동, 여성, 하층민인 경우가 많았습니다.
예를 들어 널뛰기, 그네놀이는 여성 중심 놀이였고, 아이들의 골목 놀이는 학문적 기록과 거리가 멀었습니다. 기록 주체가 놀이를 직접 경험하지 않았거나 중요하게 인식하지 않았을 경우, 놀이에 대한 세밀한 기록이 남을 가능성은 더욱 낮아집니다. 특히 아동과 여성의 놀이가 기록에서 배제된 현상은 우연이 아니라 구조적 결과였습니다. 아동의 놀이는 교육 이전의 단계로 간주되었고, 여성의 놀이는 사적인 영역에 속한 행위로 분류되었습니다. 이 두 영역은 모두 공적 기록의 대상에서 자연스럽게 제외되었으며, 그 결과 오늘날까지 전승된 놀이 기록 역시 남성 중심, 성인 중심의 시각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는 잊혀진 전통놀이 기록의 편향성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단서가 됩니다.
이는 잊혀진 전통놀이가 문화적으로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라, 기록 권력을 가진 집단의 시야에서 벗어나 있었기 때문이라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잊혀진 전통놀이를 제도로 보지 않았던 사회적 인식
조선 사회에서 잊혀진 전통놀이 는 교육, 의례, 노동과 달리 제도화된 영역이 아니었습니다. 놀이에는 공식적인 시작과 끝, 관리 주체, 규범이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특성은 놀이를 기록 대상으로 삼기 어렵게 만들었습니다.
반면 의례나 제사는 절차와 순서가 명확했기 때문에 상세히 기록되었습니다. 이는 기록이 놀이를 배제한 것이 아니라, 기록이 제도화된 행위만을 선호했기 때문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놀이가 일상 속에 깊숙이 스며들어 있었던 만큼, 오히려 기록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을 가능성도 큽니다. 너무 익숙한 것은 기록되지 않는다는 기록 문화의 특성이 여기에서도 작동한 것입니다. 이로 인해 놀이는 사회 질서를 구성하는 핵심 요소가 아니라, 질서의 외곽에서 잠시 허용되는 행위로 자리 잡았습니다. 제도가 아닌 관습, 규범이 아닌 관용의 영역에 속한 놀이는 기록보다는 기억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고, 이는 시간이 흐르며 놀이의 구체적 모습이 소실되는 결정적 원인이 되었습니다.
결과적으로 남겨진 잊혀진 전통놀이 기록의 모습
이러한 조건들이 결합되면서, 오늘날 우리가 마주하는 전통놀이 기록은 대부분 다음과 같은 형태를 띱니다.
놀이의 이름만 남아 있는 경우, 부정적 평가나 금지 기록만 존재하는 경우, 문학적 상징으로만 등장하는 경우, 체험이나 재현을 전제로 재구성된 현대 기록 등 이로 인해 전통놀이는 실제 생활 문화로서의 모습보다, 단편적 이미지나 상징으로 인식되기 쉬운 구조를 갖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기록 양상은 잊혀진 전통놀이를 실제 행위가 아닌 ‘이야기 속 대상’으로 인식하게 만드는 구조를 고착화했습니다.
잊혀진 전통놀이를 기록 대상으로 다시 바라본다는 것
잊혀진 전통놀이가 ‘놀이’로 기록되지 못한 이유를 이해하는 것은, 단순히 과거의 한계를 지적하기 위함이 아닙니다. 이는 전통놀이를 어떤 시선으로 다시 기록해야 하는지를 고민하게 만드는 출발점입니다.
놀이를 복원하거나 재현하기 전에, 왜 기록이 남지 않았는지, 무엇이 기록에서 빠졌는지를 먼저 분석해야 합니다. 전통놀이는 완성된 규칙을 가진 문화재가 아니라, 특정 환경과 생활 구조 속에서 자연스럽게 형성되고 사라진 생활 행위였습니다.
따라서 잊혀진 전통놀이를 다루는 기록은 놀이의 정답을 제시하기보다, 기록되지 못한 이유와 구조를 드러내는 작업에 가까워야 합니다. 이 글은 그러한 관점에서 잊혀진 전통놀이가 왜 오랫동안 ‘놀이’로 기록되지 못했는지를 정리한 하나의 기준 사례입니다.
이처럼 잊혀진 전통놀이는 사라진 문화가 아니라, 기록되지 못한 생활사의 결과로 이해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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