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차
놀이와 제도의 만남
전통놀이는 오늘날 단순히 민속 행사나 체험 프로그램으로 종종 소개됩니다. 하지만 전통놀이가 현재처럼 ‘명절 놀이’나 ‘축제 놀이’로 고착된 것은 우연이 아니라 오랜 사회적·제도적 선택의 결과입니다. 어떤 놀이는 역사 속에서 지속적으로 전승되었고, 어떤 놀이는 생활 속에서 사라져 잊혀진 전통놀이로 남았으며, 또 어떤 놀이는 특정 시기·공식 행사와 결합하면서 제도로 정형화되었습니다. 이 글은 대표적인 전통놀이인 윷놀이와 씨름을 중심으로, 놀이가 어떻게 ‘명절 놀이’로만 남게 되었는지를 사료·문헌을 기반으로 분석합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전통놀이의 전승과 소멸의 조건이 무엇인지를 더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놀이와 제도화의 이해
역사학자들에 따르면, 놀이 문화는 크게 두 가지 흐름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하나는 생활 놀이로, 계층·공간·일상 속에서 자연스럽게 반복·전승된 놀이입니다. 다른 하나는 제도화된 놀이로, 특정 사회적·공식적 맥락에서 규칙화·형식화되어 사회 전체에 보급된 놀이입니다. 이 두 흐름 사이에는 중요한 차이가 존재합니다. 생활 놀이는 비공식적·유동적·개인적 성격을 가지고 있고, 제도화된 놀이는 공식적·고정적·사회 참여 중심 성격을 가집니다. 전통놀이가 ‘명절 놀이’로 보존된 것은 후자의 방향으로 편입된 사례입니다. 이는 놀이가 단순히 그 자체로 즐거움을 제공했기 때문이 아니라, 공식 문화·제도와 결합한 결과입니다.
문화인류학에서는 놀이가 사회 제도와 결합하는 과정을 ‘의례화(routinization of play)’로 설명합니다. 이는 반복성, 집단 참여, 규칙의 고정이라는 세 요소가 결합될 때 놀이가 개인적 유희의 차원을 넘어 사회적 제도로 기능하게 됨을 의미합니다. 한국 전통놀이 역시 이러한 과정을 거치며 일부 놀이만이 기록과 제도 속에 편입되었고, 나머지는 비제도적 영역에 머물며 점차 잊혀진 전통놀이로 분류되었습니다.
윷놀이의 제도화 과정
윷놀이의 기원과 기록
윷놀이는 한국 전통놀이의 대표적인 사례로, 오늘날까지도 설·추석 등 명절에 즐겨지는 놀이입니다. 『신증동국여지승람』, 『열양세시기』 등 조선시대 문헌에는 윷놀이가 명절 풍속으로 정착되어 있었다는 기록이 나타납니다. 조선 후기 세시 풍속을 정리한 『동국세시기』에는 정월과 단오를 중심으로 윷놀이와 씨름이 반복적으로 등장합니다. 이는 해당 놀이가 특정 시기에만 이루어진 우연한 행위가 아니라, 사회적으로 승인된 명절 행위였음을 보여주는 사료적 근거입니다. 『열양세시기』는 서울과 근교 지역의 세시 놀이를 계절별로 정리한 기록입니다. 이 문헌에서는 윷놀이가 노동이 거의 끝나가는 시기에 공동체 단위로 행해졌다고 설명하고 있으며, 이는 윷놀이가 일상 놀이가 아닌 명절 중심 놀이로 정착되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예컨대 『열양세시기』는 정월 대보름과 추석에 윷놀이가 이루어진 풍속을 언급하며, 놀이 방식과 사회적 맥락을 설명합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서는 윷놀이를 단순한 놀이가 아닌 농경 사회의 상징 체계와 결합된 세시 의례로 설명합니다. 이러한 해석은 윷놀이가 왜 명절 놀이로 고정되었는지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기준을 제공합니다. 이처럼 윷놀이는 생활 속 놀이이기도 했지만, 명절이라는 생활 공동체의 큰 틀 속에서 공식적으로 행해졌다는 점이 특징입니다.
제도적 행사로서의 윷놀이
조선시대 지방지(邑誌)에는 마을 단위로 명절 때마다 윷놀이가 치러졌다는 기록이 다수 등장합니다. 특히 경상도·전라도 등의 향토지에서는 “정월 대보름이면 마을 사람들이 모여 윷놀이를 했다”는 설명이 반복됩니다. 이는 단순한 놀이가 아니라 공동체 의례의 일부로 형성된 놀이임을 보여줍니다.
이 과정에서 윷놀이는 종종 놀이 규칙과 운영 방식이 공식화되었고, 공동체 내부의 질서와 규범을 강화하는 장치로 기능했습니다. 즉, 놀이가 명절 행사에 삽입되면서 자연스럽게 제도화된 놀이 연구의 영역으로 들어간 것입니다. 특히 명절은 농경 사회에서 노동이 중단되는 드문 시기였으며, 공동체 구성원이 시간과 공간을 공유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집단적 여가의 장이었습니다. 이 때문에 윷놀이는 단순한 놀이가 아니라, 한 해의 풍흉과 공동체의 결속을 상징적으로 확인하는 수단으로 기능하였습니다. 이러한 사회적 기능은 윷놀이가 일상 놀이가 아닌 명절 놀이로 제도화되는 결정적 조건이 되었습니다.
제도화와 전승의 상관관계
제도적인 공간에 편입된 놀이는 놀이 규칙이 고정되고 반복적으로 상기되며, 문헌 기록과 구전이 결합되는 구조를 가집니다. 이는 놀이가 하나의 문화 기술(cultural technology)로서 축적되게 하는 조건이 됩니다.
반대로 생활 놀이들은 그 구조가 고정되지 않고, 상황에 따라 변형되며, 명시적인 규칙이 존재하지 않아 기록의 대상으로 삼기 어려웠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오늘날 우리는 윷놀이를 ‘명절 놀이’로 쉽게 떠올리지만, 이는 사실 명절과 결합된 제도적 전승의 결과로 보아야 합니다.
씨름의 사회적 기능과 제도화
씨름의 역사와 기록
씨름은 단순한 힘 대결 놀이가 아니라 전통사회에서 공동체의 질서와 체급·기량을 동시에 드러내는 장치였습니다. 조선시대 문헌 『동국세시기』, 『경도잡지』 등에는 정월 대보름과 단오에 씨름이 행해졌다는 언급이 자주 등장합니다. 『경도잡지』는 한성 및 인근 지역의 풍속과 놀이 문화를 기록한 자료입니다. 이 문헌에서 씨름은 단순한 놀이가 아니라 마을 간 기량을 겨루는 공개 행사로 묘사되어 있으며, 이는 씨름이 기록의 대상이 될 수 있었던 사회적 위상을 설명해 줍니다. 관찬 지리지인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각 지역의 세시 풍속과 함께 명절 놀이가 간략히 언급됩니다. 이 기록은 윷놀이와 씨름이 지역 사회에서 공통적으로 인식된 공식 행사였음을 보여주는 자료입니다. 각 지방의 읍지에서도 정월과 단오를 중심으로 씨름과 윷놀이가 반복적으로 기록됩니다. 이는 해당 놀이들이 특정 지역의 특수한 풍습이 아니라, 전국적으로 공유된 명절 놀이였음을 뒷받침합니다.
특히 씨름은 마을 단위 경쟁으로서, 승패가 공동체 질서 및 사회적 위계와 연결되어 기록되었고, 군현 단위, 양반과 상민 간의 기록에서도 반복적으로 나타납니다. 씨름은 놀이의 범주를 넘어 사회적 실력과 재능을 공개적으로 확인하는 통로로 기능했습니다.
씨름의 제도적 성격
조선시대에는 사대부 가문에서도 씨름이 중요한 여가 문화로 소비되었고, 지방 향교나 사찰에서도 명절 씨름 대회를 열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이러한 사실은 단순히 서민 놀이로 한정되지 않고, 사회 · 계층 전반으로 확산된 놀이임을 보여줍니다. 씨름은 신체적 능력을 공개적으로 검증하는 놀이였기 때문에, 공동체 내부의 질서와 위계가 자연스럽게 가시화되는 장이 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씨름의 승패는 개인의 명예를 넘어 마을이나 집단의 위상과 연결되었으며, 이러한 사회적 의미 때문에 지방지와 세시기 문헌에 지속적으로 기록될 수 있었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에 따르면 씨름은 조선시대부터 공식 행사와 민속 놀이의 경계를 넘나드는 활동으로 인식되었습니다. 이는 씨름이 놀이이면서 동시에 사회적 경쟁의 장으로 기능했음을 보여줍니다.
제도적 맥락에서 씨름은 공식적인 공동체 행사로서 지속적인 기록의 대상이 되었고, 이는 놀이가 잊혀진 전통놀이로 남지 않고 ‘남아 있는 전통놀이’로 자리 잡는 조건이 되었습니다.
전통놀이가 ‘명절 놀이’로 남게 된 조건
윷놀이와 씨름은 모두 경쟁 중심 구조를 갖고 있으며, 명절·공식 행사와 결합함으로써 제도 문화로 편입되었습니다. 이러한 과정에는 몇 가지 구조적 요인이 있었습니다.
- 공식 행사와의 결합
명절은 공동체 구성원 전체가 참여하는 중요한 시기였고, 여기서 놀이가 이루어지면 모든 세대가 자연스럽게 재현과 전승의 계기를 갖게 되었습니다. - 규칙의 고정화 및 기록 가능성
경쟁 중심 놀이는 규칙과 승패가 명확해 문헌화가 쉬웠고, 이는 놀이가 반복적으로 인식되는 구조적 조건을 만들었습니다. - 공동체 질서의 시각화
승패에 따른 결과는 단순한 오락을 넘어 공동체 질서의 시험·표현으로 해석되었고, 이는 놀이를 공식 의례의 일부로 자리 잡게 했습니다. - 교육적·사회적 기능 인식
놀이를 통해 규칙 준수, 질서의 이해, 협력 및 경쟁 관계가 강화되면서 놀이가 단순 유희를 넘어 사회 교육적 기능으로 평가되었습니다.
이러한 요인들은 놀이를 단순한 경험에서 벗어나 공식 문화의 일부로 변형시키는 조건으로 작동했습니다.
잊혀진 전통놀이는 왜 사라졌는가
윷놀이·씨름처럼 기록되고 제도화된 놀이와 달리, 술래잡기·공기놀이·강강술래와 같은 놀이들은 제도 속에 편입되지 못했다는 공통점을 갖습니다. 이들은 놀이의 규칙이 유동적이고, 특정 시기 또는 행사와 결합되지 않았으며, 공식 기록의 대상으로 분류되지 않았습니다. 이 때문에 오늘날 많은 자율 놀이들은 잊혀진 전통놀이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동국세시기』에도 단오·정월대보름의 놀이 풍속이 나열되지만, 숨바꼭질과 같이 일상적 놀이에 대한 언급은 거의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이 놀이들이 당시 사회에서 기록의 대상이 되기 위한 조건을 충족하지 못했기 때문이며, 그 결과 기록 밖으로 밀려난 채 시간이 흐르며 잊힌 것입니다. 잊혀진 전통놀이는 단순히 사람들이 더 이상 하지 않는 놀이를 의미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제도화·기록·공식 행사라는 세 조건 중 하나 이상을 충족하지 못해 문화적 재생산 구조에서 이탈한 놀이를 뜻합니다. 이러한 놀이들은 과거에는 분명 존재했으나, 사회가 기억하기로 선택하지 않았기 때문에 역사 서술에서 배제되었습니다.
명절 놀이 제도화의 문화적 영향
전통놀이가 ‘명절 놀이’로 남은 현상은 놀이 문화의 선택적 재현에 기인합니다. 이는 단지 놀이가 남아 있는가 사라졌는가의 문제가 아닙니다. 놀이와 사회적 맥락, 제도적 결합, 기록 체계가 결합했을 때만이 전승이 가능해졌다는 의미입니다. 이 관점에서 보면, 잊혀진 전통놀이라는 용어는 단순히 사라진 놀이를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 존재했지만 기록되지 않았고, 제도의 보호를 받지 못한 놀이라는 역사적 조건을 반영하는 개념입니다. 잊혀진 전통놀이라는 표현은 놀이의 가치가 낮았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기록과 제도화 과정에서 선택되지 못했음을 뜻합니다.
역사적 성찰이 되는 잊혀진 전통놀이 기록과 분석
윷놀이·씨름의 사례는 우리가 ‘전통놀이’라고 부르는 문화가 생활 놀이에서 제도화된 놀이로 전환되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반면 자율 놀이나 생활 놀이들은 제도·기록 체계 속에서 배제되며 시간이 흐르면서 잊혀진 전통놀이로 남았습니다. 잊혀진 전통놀이라는 표현은 놀이의 가치가 낮았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기록과 제도화 과정에서 선택되지 못했음을 뜻합니다.
이 차이를 이해하는 것은 단순한 문화유산 복원이 아닙니다. 그것은 놀이가 사회 구조·기록 체계·공동체 의식 속에서 어떻게 자리 잡고 유지되어 왔는지를 이해하는 일입니다. 이러한 사료와 문헌의 분석은 전통놀이가 어떻게 기록되고, 어떤 놀이가 잊혀진 전통놀이로 남게 되었는지를 구조적으로 이해하게 합니다. 이제 우리는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전통놀이는 무엇을 남기려 했고, 무엇을 남기지 못했는가.
그리고 잊혀진 전통놀이에서 우리는 어떤 잃어버린 생활사와 놀이 문화를 되찾을 수 있는가.
잊혀진 전통놀이를 기록하고 분석하는 일은 단지 옛날 놀이를 재현하는 일이 아닙니다. 그것은 사회가 어떤 문화를 선택했고, 어떤 문화를 버렸는지를 드러내는 역사적 성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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