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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형 잊혀진 전통놀이, 나무하기와 짐 나르기 놀이

📑 목차

    생존 노동 속에 숨겨진 나무하기 놀이의 구조

    오늘날 ‘놀이’라고 하면 여가 시간에 즐기는 활동을 떠올립니다. 규칙이 있고, 승패가 있으며, 일정한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행위가 놀이의 전형으로 인식됩니다. 그러나 전통사회에서 놀이와 노동의 경계는 오늘날처럼 명확하지 않았습니다. 특히 생존과 직결된 노동 행위 속에는 놀이적 요소가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있었습니다. 나무하기와 짐 나르기는 그러한 사례를 가장 잘 보여주는 행위입니다.

    이 글은 나무하기와 짐 나르기를 단순한 생계 노동이 아니라, 노동형 잊혀진 전통놀이라는 관점에서 재조명합니다. 왜 이러한 행위가 놀이였음에도 놀이로 기록되지 않았는지, 어떤 구조 속에서 잊혀진 전통놀이로 남게 되었는지를 문헌과 사료, 시대적 맥락을 통해 분석합니다.

     

    노동형 잊혀진 전통놀이, 나무하기와 짐 나르기 놀이

    놀이학 관점에서 본 노동형 잊혀진 전통놀이의 근거

    놀이를 노동과 명확히 구분하는 인식은 근대 이후 형성된 개념입니다. 네덜란드의 문화사학자 요한 하위징아(Johan Huizinga)는 『호모 루덴스』에서 놀이를 “자발적이며 일상과 구분되는 활동”으로 정의했지만, 동시에 전근대 사회에서는 놀이와 일상이 분리되지 않았음을 명확히 지적했습니다. 즉, 놀이란 본래 노동과 대립되는 개념이 아니라, 노동 내부에 스며들어 있는 문화적 행위였습니다. 이 이론을 적용하면 나무하기와 짐 나르기는 놀이의 정의 안에 들어와 있습니다. 오히려 놀이가 가장 원형적인 형태로 존재하던 영역이 바로 이러한 생존 노동이었습니다. 

    잊혀진 전통놀이라는 개념은 사라진 놀이를 의미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기록되지 않았거나, 놀이로 분류되지 않았기 때문에 전통이라는 이름으로 남지 못한 행위를 포함합니다. 노동형 잊혀진 전통놀이는 이 개념을 가장 분명하게 보여주는 범주입니다.

    조선시대 사람들에게 나무하기와 짐 나르기는 일상적 노동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노동은 단순한 반복 작업이 아니었습니다. 속도 경쟁, 무게 견주기, 운반 방식의 변형, 역할 분담과 교대 과정 속에서 놀이의 핵심 요소가 자연스럽게 형성되었습니다. 그럼에도 이러한 행위는 ‘노동’이라는 이름 아래 묶이며 놀이로 인식되지 않았고, 결국 잊혀진 전통놀이의 영역으로 밀려나게 되었습니다.

    조선시대 나무하기와 짐 나르기의 생활사적 위치

    조선시대 생활사 자료를 살펴보면, 나무하기와 짐 나르기는 농촌과 산촌 지역에서 매우 중요한 일상이었습니다. 『경국대전』과 같은 법제 문헌에서는 나무 채취를 직접적으로 놀이와 연결하지 않지만, 땔감 확보와 관련된 규정이 반복적으로 등장합니다. 이는 나무하기가 개인의 선택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필수 행위였음을 보여줍니다.

    『동국세시기』, 『열양세시기』와 같은 세시풍속서에는 겨울을 대비한 장작 마련 풍경이 간접적으로 묘사되어 있으며, 『농가월령가』에서도 계절별 노동 과정 속에 나무하기와 운반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들 문헌은 나무하기를 노동으로만 서술하지만, 실제 생활 현장에서는 이 과정이 공동체 활동으로 이루어졌습니다.

    마을 단위로 산에 올라가 나무를 하고, 일정 구간까지 함께 짐을 나르며 쉬어가는 과정은 단순한 노동 이상의 사회적 행위였습니다. 이 지점에서 나무하기와 짐 나르기는 노동과 놀이가 분리되지 않은 전통사회의 특성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가 됩니다.

    나무하기와 짐 나르기의 ‘규칙 없는 규칙성’과 핵심 요소

    놀이로 인정받지 못한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명문화된 규칙의 부재입니다. 그러나 민속학에서는 암묵적 규칙성 또한 놀이의 핵심 요소로 봅니다. 나무하기와 짐 나르기에는 문서로 기록되지 않은 규칙이 존재했습니다. 예를 들어, 산에 먼저 도착한 사람이 길을 정리하고, 짐을 나를 때는 일정 간격을 유지하며, 어린이나 노약자는 가벼운 짐을 맡는 관행이 있었습니다. 이는 공동체 내부에서 자연스럽게 합의된 규칙이며, 놀이가 작동하기 위한 최소 조건을 충족합니다. 이러한 규칙은 놀이판에서의 규칙처럼 유동적이지만, 반복을 통해 고정되었습니다. 이 점에서 나무하기와 짐 나르기는 규칙이 없는 행위가 아니라, 기록되지 않은 규칙을 가진 놀이적 노동입니다.

    나무하기와 짐 나르기에는 놀이의 핵심 요소가 분명히 존재합니다. 첫째는 경쟁성입니다. 누가 더 많은 나무를 해오는지, 누가 더 무거운 짐을 안정적으로 나르는지에 대한 비교는 자연스럽게 이루어졌습니다. 이는 공식적인 승패를 가리지 않더라도, 놀이적 긴장을 형성하는 요소였습니다. 

    둘째는 역할 놀이와 모방입니다. 특히 어린이들은 어른의 나무하기와 짐 나르기를 적극적으로 모방했습니다. 소형 짐을 지고 흉내를 내거나, 나뭇가지를 엮어 짐을 만드는 행위는 명백한 놀이였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행위는 ‘아이들의 장난’ 정도로 인식되었을 뿐, 놀이로 기록되지 않았습니다.

    셋째는 리듬과 반복입니다. 짐을 나를 때의 보폭, 구령, 쉬는 지점의 반복은 신체 리듬을 형성했고, 이는 놀이가 갖는 반복성과 정확히 일치합니다. 이 모든 요소는 나무하기와 짐 나르기가 단순 노동을 넘어 놀이적 구조를 지니고 있었음을 보여줍니다.

    경쟁 없는 놀이, 그러나 비교는 존재했다

    현대인은 놀이를 경쟁과 동일시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전통사회 놀이의 상당수는 명확한 승패가 없는 구조를 가졌습니다. 노동형 잊혀진 전통놀이는 이 특징을 극단적으로 보여줍니다.

    나무하기와 짐 나르기에서는 “이겼다, 졌다”는 선언이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가 더 많이 했는지, 누가 더 능숙한지에 대한 암묵적 비교는 항상 존재했습니다. 이러한 비교는 개인의 신체 능력과 사회적 역할을 확인하는 기능을 했고, 공동체 내 위계 형성에도 영향을 주었습니다.

    즉, 경쟁은 없었지만 평가와 관찰은 존재했고, 이것이 놀이적 긴장감을 형성했습니다. 이는 놀이의 또 다른 형태이며, 놀이가 반드시 승패를 요구하지 않는다는 점을 보여줍니다.

    세대 전승 구조로 본 노동형 잊혀진 전통놀이

    잊혀진 전통놀이를 판단하는 중요한 기준 중 하나는 세대 간 전승 여부입니다. 나무하기와 짐 나르기는 놀이로 불리지 않았음에도 명확한 전승 구조를 가졌습니다. 아이들은 어른의 노동을 보며 참여했고, 처음에는 작은 짐을 들거나 빈 나무를 옮기며 시작했습니다. 이는 놀이의 ‘입문 단계’와 매우 유사합니다. 점차 역할이 확장되며 실제 노동에 편입되는 과정은 놀이에서 숙련으로 넘어가는 구조와 동일합니다.

    이러한 전승은 교육이자 놀이였으며, 동시에 노동 훈련이었습니다. 놀이·교육·노동이 하나의 구조로 작동한 전형적인 사례입니다. 이 점은 나무하기와 짐 나르기를 단순 생계 활동으로만 볼 수 없게 만드는 결정적 근거입니다.

    왜 씨름은 남고, 나무하기는 사라졌는가

    씨름과 같은 전통놀이는 오늘날까지 ‘놀이’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구조적으로 보면 씨름 역시 본래는 군사 훈련과 신체 단련에서 비롯된 노동·훈련형 행위였습니다. 그럼에도 씨름은 명절, 관람성, 승패 구조를 갖추며 놀이로 정착했습니다.

    반면 나무하기와 짐 나르기는 관람 요소가 없었고, 노동과 분리되지 않았으며, 특정 날짜에만 행해지지 않았습니다. 조선시대의 기록은 놀이를 의례, 명절, 경쟁, 규칙이라는 기준으로 선별했습니다. 씨름, 윷놀이, 투호처럼 설명 가능한 놀이만이 기록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이 차이가 기록 여부를 갈랐습니다. 기록자는 이를 놀이가 아닌 ‘노동 과정’으로 인식했고, 그 결과 문헌에서 배제되었습니다. 이는 놀이의 본질 차이가 아니라, 기록 기준의 차이입니다.

    따라서 나무하기와 짐 나르기가 잊혀진 전통놀이가 된 이유는 놀이성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놀이로 인식될 조건을 충족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또한 노동은 유희보다 낮은 문화로 인식되던 시선 역시 영향을 미쳤습니다. 노동 속에 담긴 놀이성은 기록의 가치로 평가되지 않았고, 이 구조가 나무하기와 짐 나르기를 잊혀진 전통놀이로 남게 만든 결정적 요인이 되었습니다.

    노동형 잊혀진 전통놀이가 사라진 근대 이후의 변화

    근대화 이후 나무하기와 짐 나르기는 급격히 사라졌습니다. 연료 구조의 변화, 운송 수단의 발달, 노동의 기계화는 이러한 행위를 일상에서 제거했습니다. 동시에 노동 속에 포함되어 있던 놀이적 요소도 함께 사라졌습니다.

    이 과정에서 놀이로 기록되지 않았던 행위는 기억에서 더 빠르게 소멸되었습니다. 기록이 없는 놀이는 재현될 수 없었고, 결과적으로 나무하기와 짐 나르기는 ‘놀이였다는 사실’조차 인식되지 못한 채 잊혀진 전통놀이로 남게 되었습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주는 시사점

    나무하기와 짐 나르기를 잊혀진 전통놀이로 기록하는 일은 놀이를 복원하기 위함이 아닙니다. 그것은 전통사회에서 놀이와 노동이 어떻게 연결되어 있었는지를 이해하기 위한 작업입니다. 또한 전통놀이가 특정 형식과 규칙을 가진 행위만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점을 보여주는 중요한 사례입니다.

    오늘날 놀이와 노동은 극단적으로 분리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이 분리는 인간의 삶을 오히려 파편화시켰습니다. 전통사회에서 노동형 잊혀진 전통놀이는 삶의 리듬을 유지하는 장치였습니다. 노동은 고통만이 아니라, 공동체적 경험이자 놀이적 체험이었습니다.

    노동형 잊혀진 전통놀이는 전통사회의 삶 전체를 이해하는 열쇠입니다. 나무하기와 짐 나르기 놀이는 사라진 놀이가 아니라, 이제야 놀이로 다시 인식되기 시작한 생활 문화입니다. 이러한 기록이 축적될수록, 잊혀진 전통놀이는 과거의 유물이 아니라 분석 가능한 생활 문화로 자리 잡게 됩니다. 나무하기와 짐 나르기를 '잊혀진 전통놀이'로 재조명하는 작업은 단순한 과거 회상이 아닙니다. 이는 놀이의 정의를 확장하고, 전통문화의 범주를 다시 확인하며 설정하는 학술적 시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