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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음 위에서 펼쳐진 놀이
우리는 흔히 전통놀이를 ‘놀이판 위에서 규칙이 정해진 게임’으로 떠올립니다. 그러나 전통사회에서는 놀이, 이동, 노동의 경계가 오늘날만큼 분명하지 않았습니다. 특히 겨울철 얼음과 눈 위에서 이루어졌던 썰매타기와 얼음 이동 놀이는 신체 감각과 환경 적응이 결합된 놀이적 행동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공식 기록에서는 놀이로 남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기록되지 않았거나, 기록의 기준에서 배제되어 전통이라는 범주에 편입되지 못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분명 놀이적 요소를 지니고 있었고, 반복적으로 행해졌으며, 특정 계절과 공간 속에서 공동체 구성원에게 공유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전통놀이로 명명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이 글은 얼음 위에서 펼쳐졌던 썰매타기와 얼음 이동놀이의 기록으로 남지 못한 이유와 현대에 와서는 어떻게 변형되었는지를 살펴봅니다.

얼음 위 이동 놀이의 존재
전통사회에서 겨울은 농사일이 멈추는 계절이었지만, 놀이가 사라진 계절이 아니었습니다. 한반도 전역이 영하의 낮은 기온을 경험하는 겨울에는 강·논·못의 표면이 두꺼운 얼음판으로 뒤덮였습니다. 이러한 자연 조건 속에서 사람들은 얼음판을 이동 공간이자 놀이 공간으로 활용했습니다.
현대 자료에서도 전통형 썰매는 얼음판과 눈 위에서 어른과 아이 모두가 즐겨 타던 놀이적 활동이었다는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전통 한국형 썰매는 나무 널판에 금속날을 부착하거나 단순한 나무 썰매 구조로 제작되었고, 이용자는 무릎을 꿇거나 앉아 얼음 위를 미끄러져 갔습니다. 이때 참여자는 막대기나 지팡이를 이용해 방향을 조절하거나 속도를 조절했습니다. 이러한 활발한 얼음 이동 모습은 20세기 중후반까지도 농촌 강·들판·논두렁 얼음판 위에서 관찰되었으며, 겨울 놀이로서 즐겨졌습니다.
한 예로 부산 기장군 일대에서는 얼음판 위 썰매 타기가 1960~1970년대까지 성인과 어린이 모두에게 인기 있는 겨울 활동이었습니다. 지역 주민들은 작은 썰매를 얼음판 위에 놓고 막대기를 이용해 즐겼으며, 이 활발한 움직임은 당시 생활사 속 겨울 놀이로 기능했습니다.
또한 현대에도 포천 산정호수 등 얼음이 두껍게 형성되는 지역에서는 겨울 축제가 열리며 얼음 썰매를 활용한 놀이 공간이 조성됩니다. 이 축제에서는 전통형 썰매뿐 아니라 다양한 형태의 썰매와 눈놀이가 결합하여 겨울 놀이 문화를 재현합니다.
이처럼 자연환경이 마련하는 얼음 공간은 단순 이동 수단을 넘어 놀이적 경험을 제공했습니다. 이동 경로 선택, 속도 조절, 얼음 상태 판단 등은 놀이적 신체 감각과 인지 능력을 요구하는 활동이었으며, 이는 단순히 스릴을 즐기는 것을 넘어 놀이의 중요한 구조적 요소였습니다.
썰매타기의 놀이적 구조
썰매타기와 얼음 이동 놀이가 놀이로 기능했던 이유는 몇 가지 핵심 요소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첫째, 즉흥성이 강했습니다. 얼음판이 형성된 공간이 놀이장소였고, 자연 조건에 따라 환경이 매번 달라졌기 때문에 참여자들은 순간적으로 이동 경로를 선택하고 즉흥적으로 반응해야 했습니다. 이러한 특성은 규칙 중심의 놀이와 구분되는, 유동적이고 자율적인 놀이 구조를 형성했습니다.
둘째, 신체 감각과 환경 적응이 결합된 놀이였습니다. 얼음판의 상태에 따라 균형 감각, 방향 판단, 빠른 반응이 요구되었으며, 이는 놀이 속에서 반복적으로 학습되고 숙련되었습니다.
셋째, 참여 주체의 연령층이 다양했습니다. 농촌에서는 어른들도 농한기 여가로 얼음 이동 놀이를 즐겼고, 아이들은 놀이를 통해 동료와 경쟁하거나 협력하는 구조를 만들어냈습니다. 이러한 연령 간 놀이 구조는 놀이 자체의 의미를 확장시켰습니다.
이러한 놀이적 특성은 단순히 이동 수단으로서의 썰매타기를 넘어 신체적 놀이 경험의 복합적 현상임을 시사합니다. 그러나 전통사회 기록은 이러한 놀이적 측면을 포착하지 않았습니다.
썰매타기가 잊혀진 전통놀이가 된 구조적 이유
썰매타기와 얼음 이동 놀이가 공식 전통놀이로 남지 못한 이유는 기록 체계의 기준과 구조적 한계에 있습니다. 조선시대 이후의 세시풍속서, 풍속지, 읍지 등 주요 민속 자료들은 놀이를 언급할 때 의례와 공동체 행사에 연계된 반복 가능한 놀이, 혹은 경쟁과 규칙이 명확한 놀이를 중심으로 기록했습니다. 놀이가 기록되는 기준은 명절이나 연중 행사와 연계되거나 공동체적 의미가 부각되는 경우였습니다.
반면 얼음 위 놀이, 썰매타기와 같은 행위는 일상적 여가의 영역에 위치했고, 특정 의례나 공동 행사와 연결되지 않았습니다. 즉, 놀이적 요소가 일상적이고 자율적이었기 때문에 기록의 필요성을 느끼는 사료 작성자의 시선에서 벗어났습니다. 이 점은 많은 자율 놀이와 마찬가지로 기록의 우선순위에서 밀려난 결과입니다. 썰매타기가 잊혀진 전통놀이로 남게 된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이 행위가 놀이와 이동, 노동의 경계에 위치했기 때문입니다. 조선시대의 전통놀이 기록은 대부분 의례·경쟁·명절과 결합된 놀이를 중심으로 구성되었습니다.
또한 이러한 얼음 놀이의 기록 부재는 현대적 의미의 놀이 정의와도 연결됩니다. 현대적 놀이 개념은 판, 규칙, 승패 등의 요소를 전제로 하는 경향이 있으며, 이를 중심으로 기록되고 연구되었습니다. 반면 썰매타기는 특정 의례에 고정되지 않았고, 승패나 공식 규칙이 없었으며, 일상 이동 속에서 반복적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이러한 특성은 놀이의 생동성을 높였지만, 기록의 대상이 되기에는 불리하게 작용했습니다. 즉, 썰매타기는 체계적 규칙이 아닌 유동적 경험을 기반으로 했기 때문에 기록자로 하여금 놀이로 인식되기 어려웠습니다. 이러한 구조적 배제 과정은 ‘잊혀진 전통놀이’로 분류되는 여러 놀이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납니다.
결과적으로 썰매타기는 놀이였음에도 불구하고 놀이로 명명되지 않았고, 이동 수단으로만 인식되었습니다. 이는 썰매타기가 중요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라, 기록 체계가 포착할 수 없는 형태의 놀이였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은 이유로 썰매타기는 오늘날 잊혀진 전통놀이로 재분류될 필요가 있는 사례입니다.
현대적 전승과 변용
오늘날 썰매타기와 얼음 이동 놀이의 모습은 완전히 사라진 것이 아니라 변형되어 유지되고 있습니다. 도시 공원과 축제 공간에서 운영되는 겨울 놀이 프로그램, 얼음 썰매장, 눈썰매 축제 등은 전통적 얼음 놀이가 현대적 맥락에서 재구성된 형태입니다. 이러한 변화는 놀이가 환경과 시대 조건에 따라 어떻게 재탄생하는지를 보여줍니다.
그럼에도 이러한 현대적 체험은 전통놀이로서의 원형을 기록하거나 전승하는 방식이 아니라 관광·체험 콘텐츠로 소비되는 경향이 강합니다. 이 과정에서 놀이의 본래 구조와 의미는 대부분 축소되거나 변형되어 기록 밖에 머물고 있습니다.
잊혀진 전통놀이로서의 썰매타기를 다시 바라보다
썰매타기와 얼음 이동 놀이의 사례는 전통사회에서 놀이가 어떻게 일상 속에서 자연스럽게 이루어졌는지를 잘 보여줍니다. 얼음판 위의 이동은 신체 감각, 환경 적응, 동료와의 상호작용을 기반으로 한 놀이적 경험이었습니다. 썰매타기와 얼음 이동 놀이는 단순한 겨울 이동 방식이 아니라, 전통사회에서 놀이와 생활이 분리되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잊혀진 전통놀이입니다. 그러나 조선시대 이후의 기록 체계는 이러한 유동적 놀이를 포착하지 않았고, 그 결과 이러한 놀이 행위는 ‘잊혀진 전통놀이’로 남게 되었습니다. 이 놀이는 사라진 것이 아니라 기록되지 않았고, 너무 일상적이었기 때문에 전통이라는 이름을 부여받지 못한 것입니다.
썰매타기와 얼음 이동 놀이의 재조명은 놀이를 단순한 게임이 아니라, 생활 문화와 신체 감각의 총체적 경험으로 바라보는 시선의 중요함을 보여줍니다. 잊혀진 전통놀이를 재조명하는 일은 그 시대 놀이를 복원하거나 재현하는 작업이 아니라, 기록의 선택과 배제 를 사회적 맥락에서 이해하는 과정에서 시작합니다. 이 글을 통하여 우리가 어릴적 타고 놀았던 썰매타기 놀이가 이런 전통을 가지고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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